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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9> 한국화가 송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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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 기자의 다시, 길을 떠나다] <19> 한국화가 송수남

입력
2009.03.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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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장의 변신은 무죄인가? 우리는 동양화가 송수남(71)이라는 큰 텍스트의 일부만을 보고 자기가 본 게 옳다고 하는 장님은 아니었을까? 수묵 추상의 정점에서 노닐던 그가, 채색이라는 예기치 못한 강펀치를 작렬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인사동에서 펼쳤던 개인전에 이어 4월 부산에서 갖는 그의 전시회도 수묵 아닌, 녹음방초 그득한 환희의 세계다. 그는 호방하게 웃되 견결하게 말한다. 언어의 혼종성이 극에 달해 글로도 수다를 떠는 지금 세상, 수묵의 정신을 구현하듯 언어를 아끼던 그는 다행히 침묵하지 않았다. 은근한 메타포는 여전했다.

- 최근 선보인 채색화는.

"원래 서양화를 해 왔던 만큼, 수묵 하다 지루할 때면 10여 년 전 부터 조금씩 해 왔다. 본격적으로 수묵과 채색을 병행한 것은 5년 전부터다. 눈을 회복하기 위해 다양한 색을 찾아 피난 간 셈이다. 요즘은 수묵과 채색을 병행중이다. 주로 꽃 그림인데, 머리 속의 것을 그대로 뽑아 올린다. 꽃의 문인화인 셈이다."

- 2002년에 열었던 전시회 '안의 구조와 깊이'와 대극에 서는 것 같다. 당시 전시회는 수묵 추상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순간 순간 정성을 다한 결과다. 꼼꼼히 명암을 생각 않고 그렸던 그 그림은 문인화적인 팍팍한 느낌을 강조한 것인데, 집에다 갖다 걸어놓은 사람들이 다들 좋아한다. 책가도(冊架圖)를 연상케 하는 그림이 시원하고 좋다면서."

- 다음 전시회는 어떻게 구상 중인가.

"'그리운 금강산'이란 테마로 수묵화 전시를 생각 중이다. 가 보고 와서, 그 느낌으로 그릴 작정이다. 4년 전 샌프란시스코박물관에서 내 금강산도를 한 번 사 간 적 있다. 그 그림은 내가 구체적 현장을 그린 마지막 작품이다."

- 미술품을 돈으로 보는 시대다. 고가 미술품에는 이전투구 식의 진위 시비까지 겹쳤는데, 미술 작품의 미래는.

"한국인들은 장식성을 선호한다. 화초 키우는 것과 똑 같다 생각하면 된다. 수용자가 있으니 생산자가 있는 게 아니냐?"

- 가장 힘들었을 때는.

"물론 그림이 안 될 때다. 실제로 그것은 반복되고 순환하는 문제다. 1969년 신문회관에서 했던 전람회의 그림이 가장 애착이 가는데, 어쩌다 보니 모두 없어졌다."

- 당신이 주창한 '한국화'란 개념에 대한 지금의 생각은.

"우리 것이 최고라는 식을 탈피한, 보편타당성을 찾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세계적인 것만 찾아가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 그렇다면 세계적 명화를 사들이는 것이 문화적 향유라며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는 어떻게 보나.

"그 같은 주장 때문에 한국 작가들의 괴리감, 심리적 박탈감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다시 말해 '너도, 나도 아는 그림', 즉 보편 타당한 세계적 그림으로 나아가는 길이 돼야 한다."

- 순수 회화 이외의 관심은.

"재주 없으니…. 이거라도 끄적거리니 얼마나 다행이냐."

- 젊은이들과 커뮤니케이션은.

"제자가 많으니 전람회 일 등등으로 1주일에 절반 이상은 그들과 부대낀다. 한국 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제자가 400여명이 있다. 그러나 무슨 모임 하자는 제의를, 패거리 만들지 말라고 반대했다. 내가 (그런 단체와 관여할) 능력도 없고…. 무슨 무슨 학파라는 게 결국 제 힘 부족하니 기대려 하는 것 아니냐."

- 당신 그림의 고도의 추상성에 담긴 의미는.

"나이 먹을수록 몸은 가볍고, 생각은 단순ㆍ소박하게 하고 싶다. 그림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설명이 많을수록 뜻은 전달 안 되는 법 아닌가?"

-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요즘도 글 계속 쓰나.

"수필집, 논문, 화론 등 책 10여 권 냈다. <두고 온 고향> <한국화의 길> <수묵 명상> 세 권이 대표작이다. 나는 평소에 항상 뭔가 끄적거린다. 요즘은 담담하고 소박한 얘기로, 아주 단순한 책을 구상중이다. 컴퓨터는 하고 싶지도 않다.

친구들은 독수리 타법일지라도 (컴퓨터를) 하라 하지만 나는 그런 것 안 따라 한다. 큰 소리 내지 말고 조용히 사는 게 천국 가는 길이다. '고문진보' 같은 옛 글이나 큰 스님들(탄허, 성철 등)의 책을 많이 본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불교 쪽으로 관심 많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을 편안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부질없다는 말을 커버할 수 있는 것이 그런 정신이다. 한하운의 시에 '한번밖에 없는 자살을 아낀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운명이다. 태어날 때, 죽을 때는 자기 의지가 아닌 것처럼 일의 발생, 전개가 다 운명적이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된 동기, 과정이 다 운명이다. 수묵의 정신이 그런 것이다. 수묵은 '없는 것'이다. 시적인 것, 선(禪)적인 것은 나의 인생이었다."

- 동양의 정신세계 또는 수묵과의 인연은.

"3학년(홍익대)까지 서양화 공부하다 군대 가서 4학년 때 동양화로 바꿨다. 당시 명동, 을지로는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한국전쟁 이후의 암담한 사회상 아래, 이기영 선생의 불교철학 강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 어쩌다 수묵화에 집중하게 됐나.

"나는 그리고 싶은 대로 그려왔다. 내 그림에 이념이나 철학은 없다. 수묵화는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청전(이상범), 운보(김기창) 등 홍익대에 기라성 같은 선생님들이 많았다."

-성공했다고 생각하나.

"내 생각대로 잘 살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한국 동양화계의 거성이란 것도 남의 시선일 뿐이다. 엉터리를 진짜로 하는 사람이 많다. 엉터리 그림 그려놓고 최고인 양 나불대는 사람들이다. 사람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 항상 반성, 탐구, 노력해야 한다. 사람은 더불어 같이 사는 거다. 사회도 그러하듯 그림도 다양해야 한다."

- 통일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다. 북한의 한국화는 어떻게 평가하나.

"이념에 경도된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단 부자유스런 상황에서 나온 그들의 기교는 인정해야 한다. 통일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지금 통일이란 이념주의자들의 얘기로 돼 버린 느낌이다."

-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한국인에 대한 생각은.

"역사에 대한 망각이 심하다. 비참의 극이었던 6ㆍ25를 잊지 않고, 긴장하고 자숙하며 살아야 한다. 4ㆍ3사건, 광주 등을 깨끗이 해결짓지 못 한 것은 세계적 수치일 뿐 아니라 죄악이다. 우리(남과 북)가 반성해야 할 문제다."

- 사제 관계도 궁금하다.

"나의 세계는 너무 확고해 딴 세계가 필요 없다. 같은 이치로 나는 제자들의 화풍에 절대 간섭 안 한다. 자연히 두면 뭔가 된다. 학부 때 걱정스럽던 학생들도 결국 자기의 그림을 그리듯."

- 더러 고립감은 안 느끼나.

"산다는 게 외로운 거 아니냐. 외로움은 자기 성숙의 방법이다."

- 지금 가장 중시하는 것은.

"자연(환경, 간편, 단순), 가족(가정해체)이다. 나의 수묵화는 지금까지 결국 그것들을 이야기한 것이다."

- 건강은 어떤지.

"무릎이 아프고, 나이 드니 기분이 맑지 않다. 새벽 4시에 기상, 밤 10시에 취침한다."

- 돌이켜 보면 아쉬운 점은.

"없다. 왜정, 8ㆍ15, 6ㆍ25, 4ㆍ19 겪고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늙어서도 할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하다. 별 취미도 재주도 없이 그림만 그린다. 친교를 나눈 박재삼, 박성룡 등 시인들이 지병으로 먼저 갔다."

● 한국화를 위하여

1980년대, 송씨는 '한국화(韓國畵)'라는 개념의 효시를 쏘아 올려, 우리 동양화의 주체성과 정신을 새삼 환기시켰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라는 격랑을 거치고 있는 이 시대, 한국화란 과연 여전히 유효한 개념일까?

그는 "보편타당하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한국화를 이야기했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최근 중국, 일본의 동양화에서 일고 있는 풍조에 대한 경계의 의미가 크다.

그는 중국 동양화단에서 부는 새로운 바람을 두고 "거대한 시장을 업고 밀려오는 중국의 화풍은 더러 혐오스럽기까지 한 구석이 있는데, 일시적 현상"이라며 지나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쪽에서 공동 전람회 요청도 들어오지만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거부하는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그는 "모두 세계화된 마당에 한국화를 이론적으로 성립시키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는 전제 하에 "한국화라는 말 속의 무한한 지평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요청했다.

그는 한국화의 대가로 소정(변관식), 심산(노수현), 청전(이상범), 운보(김기창), 산정(서세옥) 등을 꼽으면서 "그들이 굳이 여백으로 남겨둔 '한국화론'에 소아적으로 집착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에도 굳이 자기들만의 그림이라는 주장이 없는 만큼, 다양해진 시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유연해진 입장이다. 그는 "내가 한국화라 한 것은 좁은 세상을 말한 것이지만 지금은 외국 농산물이 9할 가까이 차지하는 세상"이라며 "한국화란 것도 새로운 경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념의 폐기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주장은 더욱 세련되고 정교한 개념의 정립을 요구한다.

그는 "우리의 분청사기나 목기 등에는 분명 한국의 미가 있다"며 "그 단순, 소박, 간결함이 시대에 맞추고 조응하며 자기(自己)를 주장하는 것"이라며 후학의 분발을 요청했다.

그런데 시대가 녹록지 않다. "먹을 쓰는 과(동양화과)가 자꾸 없어져 가, 안타까워요. 홍익대에서도 조형미술과로 합치자는 움직임이 있다 하고…."

장병욱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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