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최고의 시인이자 청교도 신앙인이었던 존 밀턴은 30세 되던 1638년 5월부터 1년 3개월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영국은 당시만 해도 유럽의 '변두리 국가'에 불과했다. 밀턴이 유럽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이탈리아였다. 고대 로마 문명의 중심지이자 근대 르네상스 문화의 발상지인 이탈리아는 밀턴에게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나라요, 갈릴레이의 나라였다.
존 밀턴의 '여행 안전수칙'
' 그러나 밀턴이 여행에 나설 무렵 유럽의 정정(政情)은 심히 불안했다. 독일에서는 가톨릭 국가들과 프로테스탄트 국가들 사이의 극렬한 대립으로 인해 '30년 전쟁(1618-1648)'이 벌어지고 있었다. 청교도이자 철저한 반가톨릭이었던 밀턴에게 가톨릭 이탈리아는 이를테면 '적성국가'였다. 밀턴이 여행 준비를 하면서 자문을 구했던 인물은 베네치아 주재 영국 대사를 지낸 헨리 워튼이었다. 밀턴이 조언을 구하자 그는 이렇게 당부했다. "생각을 숨기고 정직한 표정을 지으면 전 세계 어디라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
밀턴은 가톨릭 국가를 여행하면서 자신만의 원칙을 세웠다.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경우 종교에 관한 이야기를 자신이 먼저 시작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자신의 종교에 대해 상대방이 질문을 해올 경우에는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건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겠다. 이것이 그의 확고한 방침이었다.
그는 여행 기간 내내 자신의 원칙을 지켰다. 생각을 숨기라는 헨리 워튼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되, 상대의 질문이 있을 경우 떳떳하게 자기 신앙을 드러내겠다는 태도다. 종교적 입장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민감한 문제로 상대를 먼저 자극하지 않으려는 '배려', 그럼에도 자신의 종교에 대해 당당한 태도만은 잃지 않겠다는 꼿꼿한 '기개'를 읽을 수 있다.
14일 예멘에서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자살폭탄 테러에 희생되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어 18일에는 현지를 방문한 정부 대응 팀과 유가족을 겨냥한 2차 테러까지 발생했다. 한국인이 언제든 국제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눈앞의 현실로 닥쳐왔다. 정부 고위당국자에 의하면 한국이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공격 대상에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20일 예멘 폭탄테러의 진상이 밝혀질 때까지 당분간 테러 위험지역 여행을 자제할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중동 전문가인 이인섭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이슬람 지역을 방문한 일부 한국인들이 현지인들과 대화할 때 친근감을 표시하기 위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에 대해 아는 바를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잘못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이슬람권에서는 신분이나 종교를 드러내놓고 과시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인다.
작년 가을 대학생들을 이끌고 일본에 답사 여행을 갔다가 오사카 성을 들른 적이 있었다. 구경을 마치고 나오는데 10여명의 한국인 남녀가 입구 쪽을 향해 소리 내어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힐끗거렸다. 노래가 끝난 뒤 그들 중 하나는 자랑스럽다는 듯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개종시켰다"고 외쳤다. 교회 아닌 공공장소에서 소리 내어 노래 부르는 그들의 종교적 오만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관광지에서의 예절도 교양도 찾을 수 없었다.
절제와 품격 본받아야
믿음을 배타적 광신과 동일시하고, 이웃에 대한 배려를 하찮게 여기는 '무개념 개신교'로는 세계 어디를 가도 환영 받기 힘들다. 하긴 종교지도자라는 일부 목사들부터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 발언을 서슴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개신교인들은 프로테스탄트 중의 프로테스탄트이자 위대한 청교도 시인이었던 밀턴의 '절제와 품격'을 본받을 수 없을까?
박상익 우석대 역사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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