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국립부여박물관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기획전을 준비하는 첫 단계 작업으로 전시 대상유물의 사전조사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서울로 근무지를 옮기고 만 5개월 만의 출장인지라 들뜬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하늘을 뿌옇게 덮고 있던 황사마저도 선크림이 필요 없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배려처럼 느껴졌다.
서울의 빌딩 숲을 빠져 나와 차창 밖으로 낮고 둥근 산에 올망졸망 기대어 있는 조그마한 집들과 잠자는 듯 누워있는 너른 들판을 바라보면서 남쪽으로 내쳐 달렸다. 이윽고 부여에 도착하여 권상열 관장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는 민생고부터 해결하기 위해 박물관을 나섰다. 근처의 식당에서 묵은지를 두툼하게 깔고 매운 고춧가루를 듬뿍 넣어 칼칼한 맛을 낸 갈치조림을 땀을 훔쳐가며 맛있게 먹었는데, 비록 실내 인테리어는 허술해도 부여에서 알아주는 맛집 같았다.
그렇게 하고 나서도 점심시간에 여유가 있기에 박물관 현관 근처의 벤치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둘 다 박물관장을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이 주제였다. 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모르는 직원들은 관장을 '잔소리꾼 내지는 고약한 시어머니' 로만 여긴다는 얘기부터 나왔다. 그리고 그들은 박물관의 발전과 직원 개개인의 성장에 관한 관장의 순수한 의도나 노력을 잘 몰라줄 뿐만 아니라, 대부분 자발적으로 나서서 일해 주지도 않는 것 같다고 푸념하였다.
한참 그런 얘기를 이어가다가 "우리도 젊었을 때에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로 고민을 많이 하니까 직원들보다 월급을 많이 받는 것 아니겠는가!" 라고 서로를 위로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무거운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다가 괴이한 석조물(石彫物) 하나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조금 과장해 표현한다면, 일순간 '번뇌에서 해탈' 하였다고나 할까.
그 이유는 서천 군사리에서 출토된 조선시대의 비석받침 때문이었다. 거북의 전체적인 형상도 특이하였지만, 거칠게 조각된 거북의 얼굴모습이 너무 재미있었다. 윗입술은 썰어서 식탁에 내놓아도 될 만큼 두툼하였고, 가지런한 이빨은 유독 아랫니 하나만 덜렁 빠져 있었다. 코는 하늘을 향해 있는데,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열심히 찾고 있는 듯이 벌렁거리는 모습이었다. 동그란 두 눈은 아래로 쳐져 있었고, 고개도 살짝 비틀어 옆으로 돌리고 있었다. 가지런히 모아서 길게 늘어뜨린 앞발과 함께 전체적으로 '뭔가 잘은 모르겠지만 이러이러한 것이 아닐까요' 라고 공손히 말하고 있는 듯했다.
이렇게 꺼벙하면서도 천진난만함이 담겨있는 모습에서 세상 잡사(雜事)는 저절로 멀리 달아나고,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그래서 문득 조각가를 만나고 싶었다. 잠시라도 '생각의 바다'에서 벗어나게 해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라도 드려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직업상 많은 유물을 보아왔다. 그렇지만 서천 군사리의 비석받침처럼 '보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마음을 툭 털어낼 수 있는 유물'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했다. 김준근의 풍속화, 안동 하회탈, 안성 돌미륵, 신라 토우, 제주 돌하르방, 조선 민화처럼 조금만 둘러보면 우리 주변에 널려 있었는데...., 아마도 복잡한 마음을 스스로 잘 풀지 못하고 살아왔던 탓이리라.
유병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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