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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교사 퇴임이후 첫 시집 '수양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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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교사 퇴임이후 첫 시집 '수양버들'

입력
2009.03.24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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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겨우내 잠잠하게 웅크리고 있던 만물을 깨우는 바람. 시인의 마음을 살랑이는 바람. 시인은 풍경이 된다. 김용택(61) 시인의 신작 시집 <수양버들> (창작과비평 발행)은 '나비가 날고, 여기저기 꽃들이 화사하게 만개하는' 봄날의 풍속화다.

고향인 섬진강변의 농촌 초등학교(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평생 자연의 속도에 순응하며 시를 써온 김씨에게 봄은 하늘하늘 바람에 살랑이는 연분홍빛 살구나무 꽃잎, 여인의 치맛단처럼 강물에 끌릴 듯 말 듯 드리워진 수양버들, 눈을 멀게라도 할 듯 찬란하게 흰 나비다.

봄은 아찔하다. '까만 가지 끝에 핀 꽃일수록 더 붉고 꽃빛은 숨이 턱에 찹니다. 이러다가 자지러지겠어요. 이러다가는 저 꽃이 생사람 잡겠어요. 저 꽃빛에 홀려 따라가다가는 숨 넘어가겠어요.'('구이'에서).

농밀하고 찬란한 춘경 속의 시인. 하지만 아름다워서 서럽고, 서러워서 아름답다던가. 먼 산을 바라보며 섬진강변 꽃길을 거닐던 시인에게 서러움과 슬픔이 불현듯 밀려온다.

'봄이 와서/ 꽃들이 천지간에 만발하고/ 나는 길을 잃었다/ … 강변을 너무나 오래 걸어서/ 내 발등에는/ 이슬이 아닌/ 서러운 꽃잎들이/ 날아와 박힌다'('울어라 봄바람아'에서). 몇몇 시편에서 시인은 슬픔과 서러움의 비밀을 은밀히 흘린다. 그 비밀의 한 자락은 어느덧 이순(耳順)을 넘어선 시인에게 버거워지는 세월의 무게다. 하나씩 둘씩 도시로 떠나간 이웃들, 어느덧 세상을 떠나는 친구들…. '사람들이 다 떠나갔지요/ 난 남았습니다… 쓸쓸하게 남아/ 때로 울기도 했습니다'('자화상'에서). 젊어서 죽은 마을동무 금화를 떠올릴 때 그는 에두르지 않는다. '… 금화를 생각하면 슬픔이 강물처럼 내 발밑까지 물결진다. 지금 살아있으면 환갑이다./ 환갑이라고 쓰니, 환갑이 서럽다…'('금화'에서).

슬픔의 다른 한 자락은 대물림되는 농촌의 가난이다. 농촌 초등학교에서 그가 38년 간 길러낸 꽃망울 같은 아이들. 그가 가르친 아이가 아비가 되어 딸을 낳았지만 농촌은 여전히 빈궁하다.

도시로 간 아비는 '도시의 작은 골목길 1톤 트럭 잡화장수'('사랑'에서)가 되었고, 시인이 가르쳤던 그 잡화장수의 딸 세희는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 자란다. '세희가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따뜻하고 작은 손,/ 가난은 배고픈 봄날처럼 길고 멀다… 내 어찌 눈물을 감추랴'('세희'에서). 일요일이 되어도 일기장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없는 세희. 눈 어두운 할머니, 할아버지를 대신해 세희의 손톱을 깎아주는 시인은 목이 멘다. '깎아도, 깎아도 길어나는 손톱처럼/ 가난은 잘리지 않는다.'('손톱'에서)

지난해 8월 29일 "야들아, 느덜이 하도 징글징글허게 말을 안 들어서 나 인자 핵교를 그만둘란다"라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농촌아이들을 달래며 정년퇴임한 김씨.

교편을 놓은 뒤 전업 시인이 되어 기후변화협약과 제3세계 아동의 기아문제 등 '글로벌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는 이 시집을 통해 고향의 아이들로부터 자신이 떠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사랑에 굶주린 아이들, 농촌의 가슴 아픈 현실은 내 삶 속에 각인된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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