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절제하고 은유와 상징 속에 깊은 사유를 전하는 그의 작품이 그렇듯, 이메일을 통해 돌아온 연출가 에이문타스 네크로슈스(57)의 답변은 함축적이지만 확고한 철학이 느껴졌다.
리투아니아 출신으로 1998년 극단 '메노 포르타스'를 창단한 네크로슈스는 '햄릿'(1997) '오델로'(1999) '맥베드'(2000) 등 독창적으로 해석한 셰익스피어 비극을 발표하면서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러시아 비평가들이 선정한 황금마스크상을 4차례 수상하는 등 유럽 변방 작은 나라의 연출가에서 일약 세계 정상급 예술가로 떠오른 인물이다. 3차례 내한 공연으로 한국 관객에게서도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괴테 원작의 '파우스트'(2006)를 4월 3∼5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린다.
그는 셰익스피어에 이어 괴테의 대작 '파우스트'를 연극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를 "멈춰 서라, 너는 진정 아름답구나!"라는 원작의 대사로 설명했다. "삶의 최고의 순간을 정지시키고 싶어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어리석은 꿈이죠. 그런 소망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관객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멈추지 말고 항상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가져갔으면 좋겠어요."
"고전의 재해석을 즐기는 이유는 단지 책장에 손이 닿기 좋은 위치에 고전문학이 꽂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그는 "가장 중요한 것은 원작에 담긴 '정신'(Spirit)"이라고 강조했다. "'파우스트'를 통해서는 죄악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하나의 커다란 죄를 짓는 쪽과 수많은 작은 죄를 안고 사는 것 중 과연 무엇이 더 나쁘다고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파우스트' 역시 대사는 줄이고 독특한 무대 장치로 풍부한 이미지를 구현하고자 했다. 지식의 무력함 앞에 절망한 노학자 파우스트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고 쾌락에 사로잡혔다가 다시 뉘우치고 영혼의 구원에 이르게 되는 여정을 그리기 위해 그는 무대 한가운데에서 부질없이 제자리를 맴도는 쟁기를 놓아 두었다.
이 쟁기를 지구의 자전축만큼 무겁고 힘들게 돌리는 신과 이와 반대로 손쉽고 가볍게 돌리는 메피스토펠레스. 파우스트는 이들 사이에서 종종걸음으로 헤매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언어를 절제했다지만 공연 시간이 긴 것도 그의 연출 특징이다. 지난 3차례의 내한 공연도 모두 러닝타임이 4시간 가까이 됐다. '파우스트'는 두 번의 휴식시간을 포함해 4시간 동안 리투아니아어로 진행되며 한글 자막이 제공된다.
"짧고 간결하게 원하는 모든 걸 담아내기가 쉽지 않네요. 많은 이들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수없이 많은 시간이 있지 않나요? 현대 관객의 요구에 공연의 길이를 맞춘다면, 이상적인 공연 시간은 얼마가 되어야 할까요, 10분? 10초?"
리투아니아어 연극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그에게서 한국 예술가들의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한 팁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을까. "나는 언어로 인해 한계성을 느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언어가 중요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죠. 생각만 확실하다면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공연 문의 (02)2005-0114
김소연 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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