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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싱턴 컨센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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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위싱턴 컨센서스

입력
2009.03.2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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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태국 등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일어난 1997년 서구 언론들은 '정실(情實)자본주의(crony capitalism)'라는 조어까지 동원해 유교적 계급사회의 '끼리끼리' 문화에 물든 아시아 자본주의를 비아냥댔다. 경직된 정치체제에 편승해 시장원리보다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인연이 경제활동을 지배한 결과 정경유착과 관치금융 등 도덕적 해이가 일상화해 위기를 자초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워싱턴 컨센서스'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요체는 글로벌 자본주의 클럽에 가입해 번창하려면 월가식 신자유주의를 정책규범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 당초 이 용어는 미국 국제경제연구소(IIE)가 1989년 경제위기에 처한 중남미 국가에 대한 처방으로 긴축재정, 공공지출 삭감, 외환ㆍ자본시장 개방, 변동환율제, 무역자유화, 탈규제, 기간산업 민영화 등 10가지를 제시하면서 이를 통칭하는 말로 처음 등장했다. 이후 이 용어는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미국 재무부 등 워싱턴의 3대 기관이 받드는 이데올로기가 됐으며, 월가 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 개발도상국의 경제정책은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분장한 워싱턴이 권하고 강요하는 이 틀을 벗어나면 왕따가 됐다.

▦ 미국과 함께 신자유주의의 양대 본산인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최근 "워싱턴 컨센서스로 대표되는 지난 40년 동안의 유력한 신념이 종말을 맞았다"고 선언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미 워싱턴 컨센서스의 폐기와 대안 모색을 공언한 터여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일상을 통해 일하는 것만큼의 가치를 누릴 수 있는 경제를 원한다"는 브라운 총리의 말은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주의가 진화할 방향을 짐작케 한다. 그는 또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낡은 사상'이라고 단정했다.

▦ 워싱턴 컨센서스가 선진 강대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허구라는 것을 일찍이 간파하고 이를 '나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풀어낸 사람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다. 국방부가 동명의 이 책 등 '불온한' 서적 23권을 금서목록으로 분류한 것은 장병들의 행복추구권과 평등권 침해라며 헌법소원을 낸 법무관 2명이 징계위에 회부되더니 엊그제 결국 파면됐다. 엄정한 군기와 명확한 지휘계통의 확립을 위해서란다. 군 조직의 특수성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세계사적 대변혁 조류에 무지한 군 수뇌부의 낡은 생각이 몹시 거슬린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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