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베란다 창으로 비둘기들이 날아온다. 창살에 앉아 쉬기도 하고 무언가를 열심히 쪼아대다가 훌쩍 날아오른다. 어느 날 전속력으로 날아오던 비둘기가 유리창에 머리를 박고 떨어졌다. 황급히 내려다보니 다행히 화단 나무 위로 떨어졌다. 비둘기는 혼미한 듯 두리번대다가 지그재그로 날아갔다. 아무튼 이 유리창들이 문제다. 비둘기도 아닌데 나도 가끔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힌다.
몇 년 전 통유리창으로 된 근사한 음식점에서 약속을 했다. 유리 너머로 만날 사람이 알아보고 엉거주춤 일어서는 게 보였다. 급히 들어간다고 머리부터 들이밀었는데 그곳은 문이 아니라 유리창이었다. 문이라는 확신이 컸던 만큼 반대편으로 격하게 몸이 휘였다. 아픈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창피한 것에 비하면. 그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저쪽에서 웨이터가 뛰어왔다. 안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묘한 표정들이 되었다.
가게에서는 미안하다는 의미로 샐러드를 무료 제공했다. 그 뒤로 그는 나를 만날 때마다 웃고 본다. 집에 돌아와 유리창에 일그러진 얼굴이 어땠을까 몇 번 연출해보았다.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하루였다.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유리를 잘 닦아놓은 가게를 지날 때면 긴장부터 한다. 생각보다 굉장히 위험하다, 잘 닦은 유리창은. 반드시 '유리 조심'이라고 써붙여놓아야 한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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