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같은 사람도 이야기가 되나요? 자폭할 일만 남은 사람인데…."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김현우(50) 서울남서부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를 21일 오전 서울 강서구 방화동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만났다. 그는 간밤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듯, 충혈된 눈에 푸석푸석한 얼굴로 악수를 청해왔다.
이 동네 골목에서 5년간 운영하던 99.2㎡(30평) 크기의 슈퍼마켓을 정리한 게 한달 전. 불황 속에서도 성실함으로 근근히 버텼지만, 최근 그의 가게 옆에 들어선 '기업형 슈퍼마켓'(대형 할인점보다는 작고 일반 슈퍼마켓에 비해 큰 대기업 운영 유통시설)에 단골들을 모조리 빼앗기면서 적자를 견디다 못해 결국 문을 닫았다.
"아내는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는 아이들한테 따뜻한 아침 밥 한번 제대로 못 먹인 채, 저와 같이 새벽부터 나가 하루 17시간씩 휴일도 없이 일을 했어요. 그런데도 인건비는커녕, 월세도 건지기 힘들었습니다. 매출이 4분이 1로 급감하는데야, 감당할 수 있나요." 그는 윗옷 안주머니에서 연신 담배를 꺼내 피워댔다.
당장 가족들의 생계도 걱정이지만, 재기를 위해 기댈 곳이 없다는 현실은 그를 더 큰 고통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특히 정부가 자영업자들을 위한답시고 내놓은 정책들을 살펴보노라면 울화부터 치민다.
근시안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들이 많기 때문이다. "몇 푼 안 되는 단기적인 자금 지원만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영세 자영업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중ㆍ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영업환경 조성이 중요합니다." 열변으로 그의 입가엔 하얀 거품이 끓어 올랐다.
"기업형 슈퍼마켓을 포함해 대기업들이 운영하는 중ㆍ대형 마트들이 자영업자들의 터전인 동네 골목까지 치고 들어오는데도, 정부에선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어요. 이대로 가다간 영세 업자들은 다 죽습니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터뷰가 이뤄진 방화동 아파트 단지 주변 상가에는 임대 광고 전단지가 붙은 문 닫은 가게들이 즐비했다.
"관계 당국자들이 단 한번만이라도 현장에 나와 영세 업자들의 환경을 살펴보고 정책을 내놓았다면 이런 상황으로까지 몰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점심 시간이 지난 뒤, "영세 자영업자들의 실상을 보여주겠다"며 그가 안내한 서울 강서농산물도매시장 내 청과동 단지도 상황은 비슷했다. "예전 같으면 서로 싼 값에 물건을 가져가려는 자영업자 차량들로 주차장이 꽉 들어찼지만, 지금은 텅텅 비어 있잖아요. 이게 바로 자영업자들의 현주소입니다."
해가 서산으로 서서히 넘어갈 무렵, 그는 흐트러진 옷매무시를 바로 잡고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지방에 있는 친척의 부음 소식에 조문을 떠나는 길이지만, 실은 그 곳에 모인 친지들과 자신의 장래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해보려는 생각이 더 크다.
"세상을 살면서 '희망이 안 보인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없을 겁니다. 삶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거든요. 저에게도 과연 희망이 남아 있을까요?" 붉게 물들어가는 노을을 등에 업고 느린 발걸음을 내딛는 그의 뒷모습에선 처연함과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글·사진=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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