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속이 터집니다. 지방에서 한 푼이라도 더 따내려고 발바닥이 닳도록 뛰어도 무슨 소용이랍니까. 중앙에서 내 일 아니라고 내버려 두면… "
외자 유치 업무를 맡고 있다는 지방의 한 시청 공무원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초기 투자 비용만 2,000억원 이상이 드는 연구개발(R&D) 센터를 짓기 위해 한국 정부와 접촉을 시도했다가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한 뒤 한국을 후보지에서 뺐다는 기사(본보 3월 19일자 1면)를 보고 답답해서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비슷한 시각 또 다른 전화가 잇달아 걸려왔다. 부처 담당자들이었다. 그런데 질문들이 똑같았다. 기사에 언급된 담당부처와 해당자가 누구냐는 것이었다. 덧붙여 "장관실에서 담당자를 찾아내라고 했다"며 관련자를 귀띔해 달라는 이도 있었다. 관계자를 찾기 위한 전화는 오후 늦게까지 이어졌다. 접촉을 받은 관계자를 찾아내 벌을 주는 게 그리도 중요하느냐고 되묻자 "글쎄요"라며 멋쩍어 했다.
이해원 한양대 자연과학대학장은 기사를 보고 "누구보다 공감한다"며 메일을 보내왔다.그는 6년여 고생 끝에 올 1월 대학 협력센터에 노벨상 5명을 배출한 일본의 이화학연구소(RIKEN)를 유치했다. "괜히 큰 일 맡으면 귀찮아질 게 뻔해 되도록 피하려는 (공무원 사회의) 분위기에 여러 번 좌절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수 십 차례의 설득 끝에 서울시와 교육과학기술부가 뒤늦게 나서더라"는 이 학장은 "비록 자기 일이 아니더라도 이 과제는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고 치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너무 많은 관계 기관이 얽혀 있다 보니 뿔뿔이 흩어져 돌아다니다 일은 도루묵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그 시스템도 자기 일만 하면 된다는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 신념을 갖고 뛰겠다는 공무원의 마음가짐 없이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위기를 조기 극복하자는 전국민적 의지가 아직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상준 경제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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