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로이트 지음ㆍ이가람 옮김/사문난적 발행ㆍ308쪽ㆍ1만5,000원
비만은 적이다. 비만을 물리치고 건강을 지키자는 시대의 요구를 극적으로 만족시킨 것이 바로 생수다. '물 쓰듯 한다'는 관용어를 쑥 들어가게 한 것 역시 생수다.
생수는 그냥 깨끗한 물이 아니다. 내 손에 착 들어오는 상품이다. 깔끔한 포장은 도시 사람들의 감성에 꽂혔다. 폴리염화비닐(PVC)보다 훨씬 깔끔하고 위생적으로 보이는 폴리에틸렌수지(PET)라는, 사소한 발명품이 없었더라면 20세기 말엽 미국인들이 생수를 사는 데 지갑을 선뜻 열었을 리 없다. 어디서나 페트 병을 들고 다니며 물을 마시는 선남선녀, '보틀마니아'들의 늘씬한 모습을 황홀하게 훑는 수백만 달러짜리 광고 역시 한몫 단단히 했다. 폭증하는 생수 시장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 시대 사람들은 왜 깨끗한 물에 사족을 못 쓰는 것일까? 미국의 과학ㆍ환경 전문 작가로 주요 잡지의 인기 기고자인 엘리자베스 로이트는 생수를 일러 "20세기 최대의 마케팅 성공작"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그녀가 지난해에 내놓은 책 <보틀마니아> 는 사람들을 거북스럽게 만든다. 보틀마니아>
로이트에 따르면 이제 물은 물리적 자원이 아니라 사회적 자원이다. 수입 생수를 소비한다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위상을 과시하는 계급적 행위로 돌변하는 이유다. 미국이 그 길을 먼저 보였다. 연회장에 페리에, 에비앙, 비텔 같은 수입 생수가 담긴 투명한 병을 갖다 놓고 과시하듯 마셨다.
마케팅 공세도 가세했다. "당신이 산 물건은 자연에서 난 순수한 것"이라며 "잘 사는 길로 가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세뇌하는 것이 생수 마케팅이다. "건강하려면 하루에 8잔의 물을 마셔야 한다"는 그릇된 상식, "수돗물을 마시는 것은 수준을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편견 등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 작업이다. 미국의 네슬레, 폴란드의 스프링 등 대표적 생수 회사들은 천혜의 자연이 자신들의 사유물인 양 배타적으로 쓰고 있다. "그들이 한 지역에 계속 있는 것은 매년 지하에서 뽑아내는 물의 40%가 다시 채워지기 때문"(117쪽)이라는 것이다. 원료가 무제한적으로 공급된다는 생각으로 자연을 탕진하는 것이다.
그들의 밥줄에는 수돗물도 있다. 저자에 의하면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판매된 전체 생수의 44%는 수돗물을 이용해 조제됐다. 불순물 제거 – 살균 - 광물 성분 첨가(물의 질감, 염분, 맛을 내기 위한) 등의 공정을 거쳐 '음용수'나 '정화수' 등의 라벨을 단 것이다. 땅 밑에서 퍼 올려 만든 물은 자연에 악영향을 끼친다. 천연 암반생수 회사들은 성분 분석표에 숫자만 나열했을 뿐, 곤충이나 미생물 등 자연에 대한 조사는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생수 회사들은 사실을 왜곡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공중보건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전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염소가 대표적 희생물이다. 수돗물 특유의 냄새를 유발하는 염소가 물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인 양 선전했다. 그 미끼의 가장 큰 제물은 인간의 속물근성이었다. 그들은 물을 하룻밤 병에 담가두는 등의 간단한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대신, 수질 문제로 아이들까지 물 대신 맥주를 마셔야 했던 과거의 기억을 들췄다.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거기 맞선 저자는 먼저 생수병 라벨에 있는 수치와 이미지는 거짓이라는 말로 포문을 연다. 생수 회사는 거짓을 옹호하기 위해 변호사비와 홍보비를 물쓰듯 썼다. 애꿎은 제물은 자연 손상을 감내하고 도시인들에게 생수의 원료를 제공한 수원지 근처의 주민들이다. 그들은 생수 판매 수입에서 전적으로 배제된 것이다.
뿐만 아니다. 탄소가 초미의 관심으로 떠오른 요즘, 저자의 말은 생수 회사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병을 만들고 운반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탄소가 소비된다."(289쪽) 그래도 이 물을 사 마실 것인지, 책은 질문을 여백으로 남겨 두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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