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난 서울대의 이과계열 정시입시에서 수학과가 의예과 다음으로 인기 있는 학과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아직 여러 대학의 일은 아니고 일반적인 추세의 변화로 결론 내기는 무리겠지만 한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의외의 일인 것은 분명하다.
사람들의 선호 직업은 빨리 변하고 있다. 전통적 인기 직종인 의사와 변호사가 최근의 경제위기에서 고전한다고 하고, 요즘 젊은이들은 여행과 여가를 즐길 여유나 안정성을 직업 선택에서 중요시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와 관련한 체계적인 조사결과도 나왔다. 1월 26일자 월 스트리트 저널에 게재된 인기직종 순위 기사에서, 미국 내 최고의 직업으로 수학자가 선정되었다. 작업환경과 삶의 질까지 고려한 것이라는데, 참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만하다.
기사에 인용된 여성 수학자 제니퍼 쿠터는 3차원 영상화 소프트웨어 기업의 연구원인데, 많은 사고를 요하는 '문제풀이의 과학'인 수학은 스트레스가 아닌 평정심을 준다고 말하고 있다. 월급을 받으면서 평정심까지 얻는다니 인기 직종이 될 만하지 않은가?
이 기사는 여러 이유로 고무적이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 수학은 현대 과학기술에서 언어의 역할을 한다. 따라서 수학에 대한 이해와 훈련 없이는 미래 과학기술에의 능동적 참여가 불가능하다. 중국의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여가시간에 수학문제 푸는 것이 취미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창조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는 분야에 관계없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 내시의 경우에서 보듯이 현대수학이 기초과학 이외의 많은 학문 분야에서 중요해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 17세기 뉴턴과 라이프니츠 등에 의해 발전된 미적분 개념은 만유인력 법칙의 표현 등 자연현상을 기술하는 언어의 역할을 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월마트 같은 대형 회사의 재고 관리 같은 주요 문제들을 해결하는 도구가 되었고, 군사 분야에서도 병참 보급 분야의 최적설계 문제의 기반이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애니메이션 제작과정에서 3차원 영상화 소프트웨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월 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인용된 수학자는 이 분야에서 활약하는 수학자의 예이다. 이제는 유명인이 된 애플사 사장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또 다른 회사인 픽사도 토이 스토리 같은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성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픽사에 수많은 수학자가 근무하고 있는 것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세계적 명문대학인 하버드와 매사추세츠공대(MIT) 졸업생의 직업과 사회활동을 비교한 조사 보고서가 나온 적이 있다. 하버드 졸업생들이 관리자로 근무하고 MIT 졸업생들이 그 밑에서 실무업무를 수행하는 경우가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많았다고 한다. 혹자는 인문학적 소양이 강조되는 하버드의 교육과 공학 중심의 MIT 교육의 차이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최근 대학교육의 변화를 이야기하면서 기업이 요구하는 맞춤교육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맞춤' 교육을 받은 졸업생은 당장의 해당 업무에서 능력을 발휘할지는 몰라도, 시시각각 변하는 이 시대에서 새로운 분야나 업무영역이 출현할 때 적응하지 못하고 뒤처질 소지가 많아 우려스럽다. 창의적 사고와 문제풀이 능력을 교육 받은 수학전공 학생들이 미국 실리콘 밸리의 채용시장에서 선호되는 현상을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박형주 고등과학원 계산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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