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심사숙고 끝에 꺼낸 '회심의 경기부양 카드'가 하루 만에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연준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18일 미국 장기국채 3,000억 달러 매입 계획을 발표한 직후 반짝 상승했던 미국 증시는 연준의 통화확대정책이 악성 인플레이션만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하루만인 19일 약세로 돌아섰다. 뿐만 아니라 국채 무제한 발행에 따른 국채가격 하락 우려로 달러 가격이 이틀 연속 폭락했다. 반면 한동안 안정세를 보여온 원유가격과 금ㆍ은 등 원자재 가격은 치솟기 시작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미 장기국채가격이 하루 만에 상승 반전한 것. "경기가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릴 수도 있다"고 주장해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은 버냉키 의장의 야심찬 부양책의 약발이 하루 만에 사라진 것이다. 버냉키 의장은 장기국채 가격 하락을 통해 이와 연계된 자동차 할부이자나 모기지 이자 같은 중장기 채권가격을 낮춰 경기부양을 촉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가 지난해 연말부터 이 정책의 시행시기를 고민해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 였다.
하지만 시행 하루 만에 시장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세계경제가 어려울 때 원금이라도 지키려면 역시 미국 국채가 최고"라는 안정심리가 득세한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일 "총 6조달러에 달하는 미국채 시장에서 FRB의 3,000억 달러 개입 선언 정도로는 장기 추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시장의 판단"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부작용은 상당하다. 통화 증발 소식에 달러가격이 이틀째 급락했고, 이는 곧바로 국제원자재 가격을 자극했다. 금 선물가격은 하루 만에 8% 가까이 폭등해 1온스(약 7.5돈)당 958.3달러까지 올랐다. 은 선물가격은 13%가 급등, 20년 만에 일일 최고 상승폭 기록을 경신했다. 국제 원유가격도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서면 올해 들어 최고가격을 경신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0일 "인플레이션을 우려한 투자가들이 금과 원유뿐 아니라 구리와 설탕 등 원자재를 가리지 않고 사들이고 있다"고 상품시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전문가들의 우려도 이어졌다. 국제 금속가격 애널리스트인 제임스 무어는 "FRB의 유동성 공급 확대 계획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다시 촉발시켰다"며 "금 값이 온스당 1,000 달러를 재돌파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에 말했다. 19일 WSJ은 "버냉키의 도박에 대한 초기 시장반응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일에는 "FOMC의 발표가 기대했던 금리 완화 효과 대신 시장에 악성 인플레이션 우려만 확산시켰으며, 가장 큰 희생자는 미국 달러"라며 하루 만에 태도를 바꾸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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