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소식이 즐겁다. 미국 LA의 승전보에 환호하며 유쾌한 휴일을 보내다가, 얼마 전부터 신문과 TV의 한 귀퉁이를 장식했던 '이상한 스포츠 소식'이 궁금했다. 21일 강원도 강릉에서 시작된 '세계 컬링 여자선수권대회'다. WBC 생중계에 삽입된 숱한 광고 가운데 하나의 비중도 안 됐지만, 그 개회식과 경기들은 영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10여개 나라에 거꾸로 생중계되고 있다. 1명이 얼음판에 묵직한 돌멩이를 밀어놓으면, 2명이 따라가며 열심히 바닥에 빗질을 하고, 1명이 소리지르며 지휘하는 모습, '컬링(Curling)'이다.
■많은 서양 스포츠 게임의 원조가 목동들의 '시간 때우기'에서 출발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골프와 컬링이다. 여름의 골프야 다 아는 얘기고, 겨울이 되면 할 일이 없는 목동들은 빙판으로 변한 연못이나 저수지에서 돌 굴리기(curl) 놀이를 했다. 묵직한 돌을 목표지점에 얼마나 가까이 붙이느냐를 다퉜는데, 얼고 녹은 정도와 장애물 유무가 결정적 변수였다. 우리의 구슬치기나 시마(돌) 차기 정도였을 터였다. 영국과 스코틀랜드 지역에선 '여름 골프, 겨울 컬링' 정도로 유행하고 있고, 캐나다에서는 아이스하키와 함께 국기(國技)로 통한다.
■컬링은 '빙판 위의 체스'로 불릴 만큼 두뇌게임이라고 한다. 42.1m 떨어진 지름 4.3m의 동그라미 중앙에 무게 19.96㎏ 직경 29.91㎝의 돌멩이를 어느 팀(4인)이 잘 붙이느냐가 승부다. 빗질로 얼음을 녹여 돌멩이의 속도와 방향을 제어하고, 아군의 돌멩이를 좋은 자리에 놓기 위해 적군의 돌멩이를 밀어내려면 뼈와 근육만으로 불가능하다. 착점과 수순이 중요해 '체스'에 비교된다. 서양의 골프가 우리의 국궁(國弓)과 유사한 점이 많아 우리 민족이 좋은 재능을 발휘하듯이, 체스보다 바둑이나 장기에 더 가까운 컬링 역시 우리 기질에 딱 맞지 않을까.
■1월 16일 서울광장 스케이트장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어울림 컬링 대회'가 열렸다. 협동과 화합을 살리자는 이벤트였는데, 많은 시민들이 가족 단위로 참여했다. 아빠가 돌멩이를 굴리면 엄마가 지휘하고, 아들이 빗질하면 딸은 지푸라기 등을 치웠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 얼음처럼 미끄러운 바닥은 사시사철 얼마든지 인공으로 만들 수 있다.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컬링만큼 우리와 가까운 놀이도 없을 듯하다. WBC 결승전이 끝나면 강릉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29일까지 12개국 풀 리그 예선전이 이어진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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