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는 휴대폰, 메일, 메신저 등에 비해 가장 폭 넓은 용도를 갖고 있으며 다양한 인간관계를 매개한다. 특히 세대에 따라 문자의 활용법은 크게 차이가 난다. 직장인에겐 업무용이지만 청소년에겐 교우용이다. 문자는 초를 다투는 속보부터 잊을 수 없는 감동까지 실어나르고 있다.
● 보고 싶어서, 보기 싫어서 문자한다
주부 박상미(39)씨는 하루를 문자로 시작하는 중1년 딸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버스정류장에서 몇 분에 만나"라는 문자를 띄우기 시작해 "내일 준비물 뭐니", "잘 자"까지 종일 문자를 주고받는다. 간혹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을 10여통의 문자를 날리며 낭비하는 것을 보면 박씨가 속이 터진다.
하지만 청소년들에게 문자는 말보다 재미있는 대화다. 초6년 김모양은 공휴일이면 친한 친구들에게 "문자 할 사람 모여라"라는 문자를 보낸다. 오후 한나절을 이렇게 '문자질'로 보내는 것은 커피숍에서 죽치고 앉은 아줌마들의 수다와 다를 게 없다.
고1 김효정양은 "'ㅋㅋㅋ' '>.<' 같은 이모티콘이나 축약어가 있어 문자가 더 재미있다"고 말한다. 이러니 연령대별 문자 사용량은 당연히 10대(월평균 837통·이하 KFT자료)와 20대(242통)이 압도적이다(30~50대는 40~70통, 60대는 20통 수준).
문자를 정보 전달이 아닌 수다로 여기는 청소년들은 그래서 친할수록 더 자주 문자를 주고받고, 존재감을 느끼고 친구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문자를 쓴다.
반면 어른의 세상에선 말로 하기 싫어서 문자를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장인 김모씨는 "굳이 그 사람과 통화하기가 싫어서 문자를 보내는데 꼭 다시 전화하는 사람들 정말 짜증난다"고 말했다.
전모씨는 "말로는 감정이 섞여 더 꼬일 수 있기 때문에 문자로 정리된 생각만 보내는 게 나을 때가 있다"고 말한다. 개인사업을 하는 이모씨는 "전화는 적절한 음성과 톤, 꾸민 웃음, 예의를 갖춘 어투 등을 신경써야 하지만 문자는 그럴 필요가 없지않느냐"며 "문자는 '커뮤니케이션 비용'을 절감하는 매체"라고 말했다.
물론 그러다가 큰코를 다치기도 한다. 직장 상사나 중요한 거래 상대에게 문자는 일방적인 통고처럼 보여 언짢은 소리를 듣게 되는 경우가 있다.
● 감시하려고, 벗어나려고
주부 송광선(51)씨는 수험생 아이 때문에 반드시 휴대폰을 챙긴다. '어느 선생님이 어느 특강을 한다' '내일 보충수업이 있다' '학부모 입시 설명회가 열린다'는 문자가 학원이나 학교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오기 때문이다.
자녀의 머리 위에서 맴도는 열성 학부모에게 문자는 감시 수단에 가깝다. 아이가 학원 수업에 결석을 하지나 않는지, 성적표가 나왔는지, 무슨 내용의 수업을 받았는지 등을 문자로 확인시켜 주지 않는 학원은 관리가 소홀한 학원으로 여겨 외면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어린 학생들이 문자의 피해자이기만 하랴. 대학생 중에는 학기 중 문자메시지 이용량이 방학 때보다 2배 이상 늘어난다는 이들이 많다. 수업 시간에 문자를 보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휴대폰을 수거당하는 중·고생도 학원에서는 책상 밑 손놀림이 바쁘다. 대학생 이영주(22)씨는 10대 시절 이런 '몰래 문자'를 "공부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숨을 돌리는 일탈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의 10대 시절을 떠올려보자. 선생님 몰래 쪽지를 건네가며 필담을 주고 받던 추억 하나쯤 있을 것이다. 오늘날 문자메시지는 '휴대폰으로 쓰는 필담'이리라.
● 운명을 가르는 문자들
신속성과 전달성이 보장되는 문자는 업무적 커뮤니케이션에서 점점 더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서류를 메일로 보낸 뒤 확인 문자를 보내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고, 중요 정보일수록 문자로 통한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에게 문자는 "기상특보에 즉시 대처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수단"이다. 호우 태풍 황사 강풍 등 특보 때마다 언론사와 방재기관에 문자를 쏘면, 곧 뉴스 보도, 대피 조치, 입산 통제 등이 이어진다.
그는 "여름에는 한 달에 150번까지 보내는데, 예전에는 팩스를 보낸 뒤 중요기관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수신 여부를 확인해야 했다"고 말한다.
졸업반인 대학 4년생들은 취업 특강이나 기업 채용 설명회 등을 문자로 공지받고 참가한다. 예전 학과사무실에 나붙었던 이런 공지 포스터는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는 이런 문자를 한 번에 50~2,500명에게 1년에 23만건을 발송한다.
취업이나 합격 통지 문자만큼 기쁘고 중요한 문자도 없다. 과거 전보의 기쁨이 이제 문자에게 돌아갔다. 하지만 그 중에는 '헤어지자'는 이별 통고도,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해고 통고도 있다. 이럴 때 문자는 잔인한 배신의 소통 수단이다.
김희원 기자
정영명 인턴기자
■ 날리셨나요, 받으셨나요… 당신에게 문자는 ○○○
2009년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국민은 하루에도 많게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낸다. 엄지손가락으로 쓰는 편지, 문자메시지(SMS)다. 업무용으로, 안부전화로, 회의나 수업 때 딴청을 피울 수 있는 제2의 소통수단으로, '문자'는 현대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되고 있다. 때로는 문자 때문에 운명이 갈리고,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드는 것. 그리고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는 것. 문자의 세계다.
중독이다
◆ 박연주(22·대학생)씨
하루 평균 문자를 쓰는 건수는 100건. 집에 휴대폰을 두고 나오면 손이 심심해서 견딜 수 없다. 수업을 놓치더라도 기어이 집에 돌아가서 갖고 나온다. 주로 애인에게 많이 보내는데 문자를 보낸 후에 답장을 기다리는 그 설렘이 좋다.
통화는 요금도 비싸지만 끊고 나면 끝이라 문자의 여운 같은 것이 없다. 문자의 확실한 효과 중 하나는 증거로 남는다는 점. 남자친구의 마음이 담긴 문자는 저장해 두었다가 싸웠을 때 꺼내 보이며 상기시킨다.
사랑의 암호다
◆ 김모(46·직장인)씨
몰래 하는 ‘또 다른 사랑’에 문자는 필수다. 마음대로 전화를 걸기 힘든 처지이다 보니 문자는 사랑을 확인하고 진전시키는 데에 아주 소중하고 요긴한 도구다. 특히나 짧은 단문으로 둘만의 암호를 건넬 때의 그 짜릿한 느낌!
또 다른 사랑을 위해선 휴대폰 관리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문자의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연구하고 또 관리해야 한다. 들켰다간 경을 친다. 친구 하나도 문자를 치며 미소를 짓길래 “그거냐” 물었더니 “문자가 있어서 빠진 사랑”이라고 고백했다.
참, 가장 공포스러운 것은 휴일 집에서 갑작스러운 문자 수신음을 들었을 때다. 아내가 먼저 휴대폰을 열어보았을 때, 그 스팸 문자가 어찌나 반갑던지.
2% 부족한 성의다
◆ 박모(35·회사원)씨
나도 업무상 문자를 많이 쓰기는 하지만 아무에게나, 아무 용건이나 문자를 보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이들(특히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사원들)의 문자는 불쾌하고 예의 없어 보인다.
가령 약속에 늦는다고 알리는 것은 전화로 해야지 문자로 보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문자는 사전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또 통화 한 번으로 끝낼 일을 답장을 보내줘야 할 때도 귀찮은 메시지일 뿐이다.
해장국이다
◆ 이상엽(51·회사원)씨
이제는 내 또래 사람들도 다 문자를 자주 해서 웬만한 약속 통보나 안부 대화도 문자로 오가는 일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아무래도 전화보다 비경제적인 건 사실. 다만 문자가 가장 유용한 순간은 지난 밤 늦게까지 술을 먹고 난 다음날 안부용이다.
해장국 생각이 간절할 때쯤 잘 들어갔습니까, 다음에 또 한번 뭉칩시다 같은 인사를 전하는 데에는 문자가 딱이다. 가뜩이나 술이 안 깨 정신도 없는데 잠도 안 깬 목소리로 통화하긴 싫으니까.
머리 염색약이다
◆ 이경미(62·주부)씨
자식들과 호흡을 맞추려 최근 문자를 배웠다. 이따금 날려주는 문자에 아이들은 매우 놀라워 했다. 우리 엄마가 이런 것도 할 줄 아느냐며 대견해 하는 놈들. 이제껏 날 아주 무시하고 살았나 보다.
하지만 아직도 문자는 서툴고 불편하다. 칭찬이 듣고 싶어 보낸다지만 귀찮은 게 사실이다. 잘 보이려고 일부러 사서 고생하는 것 같기도 하고. 돋보기 쓰고 억지로 단추 눌러대는 내 모습이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남한테 잘 보이려 번거롭게 하는 것이 머리 염색이나 마찬가지.
라디오방송이다
◆ 이종승(72)씨
오는 문자는 화면에 뜨니까 읽겠는데 도무지 답변할 수가 없다. 기계에 밝은 친구들은 어떻게든 배워 문자를 날린다고 자랑하지만 굳이 따라하고 싶지 않다. 자주 오지도 않는 전화. 늙으면 사람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손자놈들이 가끔 문자로 인사를 건네오지만 난 손자 목소리를 듣는 게 더 좋다.
김희원 기자
이성원기자
■ 아는 만큼 쓴다 숨은 재주꾼 SMS
대각선으로 2인치 남짓한 액정화면과 10개의 숫자키에 몰아 넣은 자음과 모음. 이게 텍스트를 주고 받기 위한 기계뭉치에 불과할까. 무심코 사용하는 문자메시지 서비스도 똘똘하게 쓰면 생활에 큰 편리를 주는 도구가 될 수 있다.
▲ 보디가드
각 이동통신사는 문자메시지 기능을 응용한 일종의 '호신술'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지켜주고 싶은 상대방을 등록해 놓으면 그의 안전 여부를 수시로 확인할 수 있고, 내 위치도 상대방에게 보내줄 수 있다. 부모가 메시지 내용과 함께 아이의 위치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 국제특송
비싼 국제통화 요금이 겁나는 이들을 위한 국제 문자메시지 서비스도 나와 있다. KTF는 세계 160개국에 사용되는 휴대전화기로 건당 100원에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SK텔레콤 사용자는 중국 차이나유니콤 가입자와 한글로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을 수 있다.
▲ 대화친구
고독에 찌든 현대인을 위한 '대화' 서비스도 있다. KTF '심심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언제 어디서나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정해진 번호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인공지능 시스템이 상황에 적절한 답장을 보내준다. 사이버세계의 암울함이 드리운 기술이지만, 우울증 환자에겐 효과가 있을 수도.
▲ 동시통역
각 통신사는 영어와 일어 등 외국어 번역 서비스를 문자메시지 형태로 제공하다. 수백만개의 단어, 문장, 용례가 저장된 프로그램이 별도의 번역 프로그램 없이도 웬만한 문장은 실시간으로 번역해 낸다. 간단한 이용법으로 번역ㆍ작문 학습에도 도움이 된다.
▲ 스팸사절
문자메시지 서비스를 사용하면서 가장 큰 고통은 받기 싫은 메시지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SK텔레콤 고객은 스팸 문자의 패턴을 직접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VM(버추얼 머신)을 휴대전화기에 다운로드받아 사용할 수 있다. 일괄적으로 스팸메일을 걸러내는 프로그램과 달리 자신에게만 날아오는 귀찮은 문자를 쏙 집어 차단할 수 있다.
유상호기자
■ 문자도 말·행동만큼 에티켓 필수
미숙: (뱃속 깊숙이 끌어올린 발성으로 소리 버럭) 그냥 고맙고 미안해서라구요? 그냥, 고맙고, 미안해서! 그래서, 저한테 특ㆍ수ㆍ문ㆍ자까지 보냈어요?
서 선생: 호… 혹시, 그거… 자동으로 막 그림 붙고 그러는거죠?
미숙: (동작 중단!) …자동으로… 자동으로… 붙는다구요?
서 선생: (애써 무심한 척) 지난달에, 해제시켰어요… 애들이나 쓰는 그림 서비스를 왜 하겠어요? 내가… 한심한 것들!
공효진도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 영화 '미쓰 홍당무'의 클라이막스 부분이다. 안면홍조증 환자인 러시아어 교사 미숙(공효진)은 시도 때도 없이 '삽질'을 계속하는 비호감 왕따. 그러나 미숙은 선배 교사인 서 선생(이종혁)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지지난해 회식자리에서도 내 옆에 앉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도 내 옆에 앉았기" 때문. 가장 확실한 증거는 서 선생이 휴대전화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알록달록한 하트 문양의 특수문자를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건 서 선생이 원치 않았던 통신회사의 '부가서비스'일 뿐이었다.
휴대전화를 끼고 살다 보면 미숙 못지않은 황당한 오해를 겪을 때가 있다. 별 생각 없이 이용하는 20원짜리 서비스로 인해, 20년 우정에 금이 가는 일도 심심치 않다.
간편한 의사소통 도구로만 알던 문자메시지. 그러나 자발없이 쓰다가 경을 치기도 하고, 남의 가슴에 대못을 박기도 한다. 문자메시지를 쓸 때 조심해야 할 점들을 살펴보자.
#1. 직장인 R(38)씨. 지난해 퇴근길에 아내에게 조금 늦는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나 저녁만 먹고 들어갈게." 동료와 밥을 먹는 도중 살벌한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한참의 침묵 끝에 수화기 저쪽에서 들리는 목소리. "…. 지금 도대체 뭐하자는 건데?"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이 말을 하자마자 아내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영문을 알 수 없던 R씨는 '보낸메시지' 함을 열어보고 화들짝 놀랐다. 급히 자판을 두드리느라 두번째 단어의 'ㄱ' 받침을 'ㄴ'으로 찍어 보냈던 것. R씨는 이후 한참 동안 저녁식사를 밖에서 해결해야 했다.
☞맞춤법을 지키자
문자 메시지가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표준어 규정을 지키고 모호한 표현은 피해야 한다.
#2. 취업 준비생 P(29)씨. 급히 돈을 꿔야 할 일이 생겼다. 먼저 취업한 친구에게 차마 전화는 못하고 문자를 보냈다. 곧바로 돌아온 친구의 답신. 마지막 줄이 이거였다. "…그 나이 먹도록 남한테 손이나 빌리냐" 모멸감에 순간 살의까지 일었다.
바로 또 문자를 보냈다. "내가 착각했다. 너 같은 놈을 친구로 생각했다니. 네 돈은 필요없다. 두 번 다시 연락 말자." 'SEND'키를 누르자마자 그 친구에게서 또 문자가 왔다. "는 소리 듣지 않게 딴 놈들한텐 말하지 마라. 바로 넣어줄 테니 계좌번호 찍어." 친구의 문자는 40자가 넘어 두 개로 나뉘어 왔던 것이다.
☞끝까지 읽어보자
대부분 통신회사의 단문 메시지(SMS)는 한글로 40자까지.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려면 컬러메시지나 멀티미디어 문자메시지(MMS)를 이용하자.
#3. 직장인 Y(33)씨. 베트남으로 출장을 떠나며 휴대전화를 로밍해 갔다. 호치민까지 날아온 문자메시지. "결재서류 폴더 비밀번호를 문자로 전송 바람." 부장님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는 문자메시지를 받을 수만 있지 보낼 수는 없었다.
전화를 걸었지만 부장님은 받지 않았다. "회의 중. 문자로 회신 바람." 다시 걸었다. "왜 이래? 회의 중이라니까. 문자 회신!" 부장님의 짜증난 얼굴을 떠올린 Y씨는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지만 발을 구를 수밖에 없었다.
☞상대 처지를 배려하자
문자메시지는 받는 사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없는 맹점이 있다. 반드시 전해야 할 메시지라면 직접 전화를 걸어서 얘기하자.
유상호 기자 shy@hk.co.kr
정영명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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