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이용진(28)씨는 친구를 만날 때면 서울 지하철3호선 안국역 부근 '아름다운 카페'를 즐겨 찾는다. 바리스타가 직접 내리는 향긋한 양질의 커피 때문만은 아니다. 이 카페의 커피 원두는 네팔과 페루 등지의 생산자들과 직거래로 들여온 것이다.
저개발국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이른바 '공정무역'(Fair Trade) 상품이다. 이씨는 "커피 한 잔을 마셔도 마음 넉넉하고, 가슴 뿌듯하게 마실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지난 10년간 '별다방'(스타벅스) '콩다방'(커피빈) 등 다국적 체인들이 점령해 온 다방 문화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이른바 '착한 다방'들의 출현이다.
유명 체인들이 "우리는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문화를 파는 곳"이라고 포장한다면, 이들은 "우리는 커피가 아니라 가치를 파는 곳"이라는 기치를 내건다. 공정무역 상품을 통해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고, 청년ㆍ노인 실업자들을 바리스타로 교육시켜 일자리도 만든다. 최고의 기호식품 커피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파는 셈이다.
아직 점포 숫자만 보면 스타벅스(서울 174개)나 커피빈(126개)에 비할 수 없지만, 착한 다방들은 서울 종로와 신촌, 대학로 등을 중심으로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가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오는 커피 원두를 쓰는 카페만도 45곳에 이른다.
'아름다운 가게'는 2006년부터 공정무역 원두를 팔기 시작했는데, 고객들의 요구로 지난해 6월 카페를 열었다.
'아름다운 카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김무성 간사는 "8개월 사이 매출이 월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늘었다"면서 "공정무역을 통해 제3세계 빈곤문제 해결에 보탬이 된다는 취지 때문에 인근 직장인들은 물론,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카페'는 내달 수유동과 충남 천안의 단국대 캠퍼스에 2,3호점을 여는 등 올 연말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10개의 점포를 열 계획이다.
일자리 만들기도 착한 다방들이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다.
지하철2호선 이대역 1번 출구쪽 닥지닥지 붙은 2층 건물에 위치한 '카페 티모르'. 18일 오후 이곳을 찾았을 때 해맑게 웃고 있는 동티모르 어린이들 사진 사이로 커피를 마시는 손님, 그리고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는 20~30대 청년들로 북적였다.
YMCA는 동티모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2004년부터 동티모르 커피를 공정무역을 통해 판매하다 지난해 3월 숭례문 부근에 '카페 티모르'를 냈다. 현재 3호점까지 냈고 작년 8월부터는 이대점에 바리스타 교육장을 만들어 교육 이수자들을 매장에 배치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9명이 이를 통해 일자리를 얻었다.
YMCA 조여호 팀장은 "카페를 단지 마시고 수다 떠는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 비록 적은 수지만 바리스타를 교육해 고용하고 있다"면서 "2012년까지 10호점을 개점하고 규모도 넓힌다면, 더 많은 실업자들을 고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 일자리 만들기에 기여하는 착한 다방도 있다. 성북구 하월곡동의 월곡사회복지관 2층에 자리잡은 '더 카페'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7명이 돌아가며 커피를 내리고 손님들을 맞이한다. 이들은 월곡복지관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은 60, 70대로, 올해 1월 문을 연 카페의 실질적인 운영자들이다.
아직도 꼬깃꼬깃한 3장의 레시피를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는 이선만(63)씨는 "노인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손님들 반응도 좋아서 우리 커피 마시려고 일부러 복지관을 찾는 사람들도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이응호 복지사도 "반응이 예상보다 좋다. 이런 카페가 확산되면 노인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카페'의 김무성 간사는 "최근 착한 다방들의 급속한 성장은 커피 한 잔의 일상에서도 사회적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2, 3년 후면 착한 다방이 스타벅스와 대적하며 한국의 다방 문화를 바꾸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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