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 2,300만명이 배 고프지 않을 수준으로 먹으려면 식량 650여만톤이 필요하다. 기후 사정에 따라 북한의 연간 식량 생산 능력은 350만~450만톤 정도. 매년 200만~300만톤 씩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달러가 모자라니 식량 수입으로 해결할 수도 없고, 사회주의 생산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생산력이 크게 나아질 리도 없다. 외국의 식량 지원이 없이는 제대로 생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북한이 18일 미국의 식량 지원을 거절했다. 미국은 지난해 6월부터 1년 간 50만톤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까지 지원량은 16만9,000톤. 18일 순식간에 33만1,000톤의 식량이 허공으로 사라진 셈이다.
북한의 이번 행동은 ‘철천지 원쑤’라고 비난하는 미국으로부터 원조를 받는 것에 대한 ‘자존심’ 문제만은 아니다. 북한은 1995년 이후 국제사회에 식량 지원을 호소해 왔고, 이번에도 “앞으로 계속 미국의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선을 긋지는 않았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긴장 고조를 위한 일련의 행동 과정에서 미국과 대립각을 더 선명하게 세우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사일(인공 위성) 발사를 공언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대북 식량 지원 중단은 미사일을 쏠 경우 쓸 수 있는 대북 제재 카드 중 하나다. 북한은 제재 움직임이 있을 경우 “우리는 식량을 달라고 한 적이 없는데 무슨 제재냐”고 주장할 여지를 만들어 둠으로써 제재 카드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세계식량계획(WFP)을 통한 미국의 식량 지원은 답보 상태였다. 미국은 분배 투명성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한국어가 가능한 감시 요원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고, 북한이 반대하면서 지난해 말 이후 지원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북한은 “차제에 감시 요원을 늘리자는 요구를 쑥 들어가게 하자” “어차피 식량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으니 전술적 도구로 활용하자” 등의 판단을 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북한은 중국의 대북 식량 지원량을 늘려 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대안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북중 수교 60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인 북한 김영일 내각총리가 실제 이 문제를 꺼낼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긴장 조성을 통해 얻을 것을 얻은 뒤 다시 유화국면이 되면 미국으로부터 다시 받을 계산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18일 결정으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것도 희생시킬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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