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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배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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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배우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

입력
2009.03.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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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서울 마포구에 있는 주민자치센터에서 매주 한 차례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중국 고전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대학이나 기업체에서 강의한 적은 있지만 불특정 다수의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은 처음이다. 어떤 분들이 수강을 하는지, 처음엔 제법 긴장했다. 강의 내용과 수준을 어떻게 잡는 게 좋을지 막연하기도 했다. 예상대로 수강하는 주민들의 연령층은 대략 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다양했다. 여성이 약간 더 많았고 연세 지긋한 부부가 함께 수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첫 강의를 마치고 긴장과 걱정을 깨끗하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필자가 경험한 그 어떤 강의에서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임해준 주민들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존경심마저 드는 것이었다. 평일 저녁 7시라면 직장인들은 업무나 퇴근으로 바쁠 때이고 주부들도 바쁠 때다. 그러나 주민들은 지각하는 경우도 거의 없이 출석해서 노트 필기도 하고 질문도 하면서 2시간 내내 열심히 임해주었다. 강사 입장에서는 한 마디로 말해서 강의할 맛이 나는 것이다.

관계자에게 들으니 마포구가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되어 시민교양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으며, 필자의 강의도 그 일부라고 한다. 건강, 취미 관련 강좌도 있고 철학사상, 역사, 고전 같은 인문교양 강좌도 개설하고 있다. 건강이나 취미 관련 강좌라면 모르겠지만, 인문교양 강좌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게 될 것인지, 기대 반 우려 반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우려는 그야말로 기우에 불과했다. 수강생 숫자나 참여 열기가 기대 이상이다.

이를 두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 대학에서 이루어지는 학술 연구로서의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목소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적어도 일반 시민들의 인문교양에 대한 욕구와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는 것. 대부분의 시민들이 바쁘고 고되고 팍팍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겠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인문교양의 가치를 인식하고 배우려는 열의가 살아 있다는 것. 그런 욕구와 수요와 열의에 부응하기 위한 보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보다 많은 지자체에서 일상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사실 역사, 철학, 문학 같은 인문학은 전문적인 학술 연구 차원이 아니라면, 인생 경험이 풍부한 중ㆍ장년 이상 연령층에서 이해도가 높을 가능성이 크다. 삶의 다양한 고비를 넘기며 사람과 인생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다양하고 깊을수록, 인문학의 주제들을 좀 더 공감적으로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가 담고 있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 「시경(詩經)」이 담고 있는 고대인의 삶의 애환을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에는, 젊음의 날카로운 재기(才氣) 보다는 중년의 원숙한 통찰력이 제격이다.

공부에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있지만, 배움에는 끝이 없다거나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는 말도 있다. 초고령 사회에 대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요즘이고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이 타당하지 않나 싶다. 마침 다음 주 강의 주제가 「논어(論語)」다. 그 유명한 첫 구절을 새삼 되새겨 본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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