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후반 패색이 짙은 일본 덕아웃은 침울했다. '난공불락'이 돼 버린 한국 야구에 대한 모멸감과 경의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공한증(恐韓症)'. 중국인들이 한국 축구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이 병적일 만큼 강하다고 해서 유래된 말이다. 야구에서는 일본이 비슷한 증상에 시달리게 됐다. 경제력이나 저변 등 모든 환경에서 한국을 압도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국제 대회에서는 한국만 만나면 맥을 못 추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한국보다 한 차원 높다"고 큰소리쳐 온 일본 야구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프로 선수들이 참가한 국제대회에서 4승9패로 밀리고 있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만난 모든 대회를 망라해도 28차례 대결에서 12승16패로 한국에 무릎을 꿇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영웅'들은 차례로 매운 한국 야구에 나가 떨어졌다. 나가시마 시게오(요미우리 종신 명예 감독)감독이 이끄는 '나가시마 재팬'은 시드니 올림픽 3ㆍ4위전에서 한국에 동메달을 뺏겼다. 2006년 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일본 야구의 '전설' 오 사다하루(왕정치) 감독도 한국에 1승2패로 밀렸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에서 '호시노 재팬'은 한국에 2패를 당하며 노메달의 굴욕을 당했다.
때문에 일본은 이번 2회 WBC를 맞아 설욕 의지가 남달랐다. 1회 대회 때 4강전에서 한국을 이기고 우승을 하긴 했지만 앞서 당한 2패가 개운치 않았다. 베이징올림픽에서의 '참패'는 결정적으로 일본의 구겨진 자존심을 자극했다. 절치부심한 일본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을 비롯한 메이저리거를 총출동시켜 '사무라이 재팬'이라는 무시무시한 공식 팀 명칭으로 일본 역대 최강팀을 탄생시켰다.
일본은 아시아 예선 첫 경기만 해도 한국에 콜드게임승을 거두며 잃어버린 자존심을 되찾는 듯했지만 조 1위 결정전에서 영봉패를 당했고, 본선 1조 승자전에서 다시 1-4로 무너졌다. 호시노 감독은 베이징올림픽 참패 직후 "한국과의 수준차는 없다"고 잘라 말했고, 나가시마 감독과 오 사다하루 감독도 수직 상승한 한국의 실력 앞에 고개를 숙였다. 아시아 1등과 2등 자리를 맞바꾼 한ㆍ일의 야구 역사는 '젊은 피' 하라 감독도 돌이킬 수 없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이번 대회 최강으로 평가 받고 있는 일본을 이길 팀은 한국 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WBC에서만 1회 대회 때부터 4승2패를 마크, 일본 열도를 '공한증'에 떨게 하고 있는 한국이기에 가능한 얘기다.
성환희 기자 hh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