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계좌에 들어 있는 돈은 실소유주가 아니라 명의를 빌려준 사람에게 귀속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993년 금융실명제가 시행된 이후에도 예금의 실소유주와 금융회사간에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속이 있었던 경우 실소유주를 차명계좌의 예금주로 보아온 기존 판례를 바꾼 것이다. 이번 판결로 기업이나 개인이 불투명한 자금거래에 차명계좌를 이용해온 관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19일 이모(48ㆍ여)씨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투명한 금융거래를 추구하는 금융실명제의 입법취지로 볼 때,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체결한 예금계약서상의 명의자를 예금주로 봐야 한다"며 "예금명의자를 배제하고 출연자(실소유주)를 예금주로 해석했던 기존 판례를 변경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계좌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 권리를 주장하면 예치 된 돈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금융회사와 예금 실소유주 간에 계약서 등의 형식으로 '예금 명의자가 아닌 실소유주에게 예금이 귀속된다'고 명백히 합의한 경우 예외적으로 실소유주를 예금주로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경우 금융실명법 위반이기 때문에 금융회사는 행정제재를 받게 된다.
이씨는 각각 자신과 남편 명의의 2개 계좌로 J상호저축은행에 예금을 해오다 J저축은행이 파산하는 바람에 예금자보호법에 따라 예금보험공사로부터 예금액을 대신 지급 받게 됐다. 하지만 예금보험공사가 "이씨 명의 계좌도 출연자인 남편 소유로 봐야 한다"며 예금자보호법의 1인당 보장한도액을 들어 남편 명의의 한 계좌에 대해서만 예금을 지급하자 소송을 냈다. 1ㆍ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출연자인 남편이 예금주"라며 이씨의 소송을 기각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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