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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미 FTA와 미국의 '게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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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한미 FTA와 미국의 '게임 전략'

입력
2009.03.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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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로 지명된 론 커크가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한미 FTA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해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 처리를 앞둔 우리 정부와 여야를 혼돈에 빠뜨렸다. 커크 지명자는 보호무역주의의 부활이라는 비난이 거세게 일자, 뒤늦게 "전반적으로는 한미 FTA를 지지한다"고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그간 미국 의회와 USTR의 행태에 비추어 볼 때, 커크의 발언은 우연한 것이기보다 고도로 계산된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미 무역대표의 계산된 발언

미국 쪽의 이 같은 전략적 행보에 비해 우리 정부와 국회는 엇박자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있었던 일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한미 FTA는 2006년 2월부터 8차례 협상을 거듭한 끝에 그 이듬해 4월에 타결되었다. 그 와중에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였다. 협상이 한창 뜨겁게 진행되던 2006년 12월, 미국측 주장과 동일한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미국 측은 우리 저작권법에 친고죄로 되어 있는 처벌조항을 폐지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저작권 침해물을 단속할 때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한다는 조항은 저작권자 입장에서는 대단히 거추장스러운 것이다. 미국은 이 때문에 자국의 지적재산권이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보고, 친고죄 조항 폐지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세웠다.

우리 국내에서도 이미 FTA 협상과 관계없이 친고죄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었고, 이런 내용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된 상태였다. 국회는 FTA 협상 결과를 지켜보면서 법안을 처리해도 될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협상 진행 중에 서둘러 개정법안을 통과시켜버렸다.

알려진 바와 같이 최종 협상에서 한미 양측 대표는 머리를 맞대고 하나를 주고 하나를 받는 이른바 빅 딜을 하였다. 따라서 맞교환에 쓸 카드가 많을수록 협상 결과를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도 협상 막바지에 저작권법 개정안을 국회가 먼저 통과시킨 것은 정부 협상 팀이 지닌 비장의 협상카드 한 장을 국회가 미리 내버린 셈이었다. 맞교환할 수 있는 포로 한 명을 그냥 풀어준 것과 다를 게 없다.

USTR의 협상타결 보고를 받은 미국 의회는 노동 환경 등 7개 분야에 대한 추가협의를 요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비준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USTR은 의회를 핑계 삼아 우리 쪽에 압력을 가했다. 뻔히 수가 들여다보이지만 우리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정부가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 때 "추가협상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 것과 비교하면, 한미 양국이 어쩌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싶다. 한 쪽은 협상 팀에 실탄을 끊임없이 공급하고, 다른 한 쪽은 후방에서 실탄을 까먹고 있는 형국이다.

올해 초 국회 파행 사태 후 여야는 마치 고기를 근으로 달아 팔 듯, 의장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할 법안과 추가로 논의할 법안을 갈랐다. 그러나 이 가운데 혹시 한미 FTA 비준을 전제로 마련한 개정 법률안이 포함돼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재협상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한미 FTA 이행을 위한 개별 법안을 통과시키기라도 한다면, 향후 실제 재협상이 진행될 경우 상황이 리셋(reset) 되어 우리가 또 다른 양보를 해야 할지 모른다.

'협상카드'함부로 버려선 안돼

커크 지명자의 의회 발언을 바둑에 비유하면 끝내기 국면에서 몇 수를 무르자거나 아예 새로 두자는 것과 같다. 그만큼 억지 주장이다. 그러나 어차피 재협상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는 FTA 이행을 위한 개별 법안 심의는 당분간 중단해야 한다. 바둑판에서 내가 딴 돌로 상대의 집을 메우지 않고 상대방의 바둑돌 통에 집어넣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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