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차이 72배(260억원 대 3억 6,000만원). 일장기를 가슴에 단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간판타자이자 일본야구의 자존심이다. 마운드에 선 태극전사 봉중근(LG)은 메이저리그에서 꿈을 접고 국내로 돌아온 신세. '포장지'만 놓고 보면 비교가 안 되지만 '의사(義士)'는 또 한번 일본의 자존심을 꺾었다.
'봉 의사' 봉중근이 '사무라이 재팬'의 자존심 스즈키 이치로(36ㆍ시애틀)를 또다시 무너뜨렸다. 18일(이하 한국시간)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벌어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본선 1조 일본과의 승자전에서 선발 등판한 봉중근은 일본의 첨병 이치로를 3타수 무안타로 완벽하게 봉쇄했다.
지난 9일 아시아라운드 순위 결정전에서 3번 모두 땅볼로 솎아낸 것을 더하면 봉중근은 이치로와의 대결에서 6타수 무안타의 KO승을 거뒀다. '천하의 이치로'지만 시속 151㎞짜리 강속구를 뿌린 봉중근 앞에서 철저하게 꼬리를 내린 셈이다.
9일 경기의 무안타 수모를 만회하려는 듯 이치로는 첫 타석부터 이를 악물고 덤볐다. 하지만 1회초 첫 타석에선 2루 땅볼로 물러났고, 3회 두 번째 타석에서는 3루 땅볼에 그쳤다. 이치로는 0-3으로 뒤진 5회 무사 1ㆍ3루에서 빗맞은 2루 땅볼로 3루 주자 후쿠도메 고스케(시카고 컵스)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후쿠도메의 빠른 발이 아니었다면 타점으로 기록되기도 어려운 타구였다. 선행주자 조지마 겐지(시애틀)가 2루에서 아웃 된 틈을 타 간신히 1루를 밟은 이치로는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에도 이치로는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봉중근은 "이치로가 주로 당겨 치는 타자라 바깥쪽 변화구로 승부한 게 잘 먹혔다. 다시 만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다"며 밝게 웃었다.
봉중근이 한ㆍ일전 승리의 주역이 되자 태평양 건너 한국에 있던 부친 봉동식(67)씨는 "장하다. 내 아들"을 외쳤다. 효자로 소문난 아들 중근의 지극 정성으로 대장암을 딛고 일어선 봉씨는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 경기 전에 많이 긴장했을 텐데 씩씩하게 잘 던졌다"면서 "예선 때보다 구속이 더 빨라졌다. 무엇보다 수비수들이 잘 해줬고, 한국 선수 모두 잘했다"고 말했다.
봉중근의 효심은 신시내티 시절 현지 미국 언론에 소개될 정도로 유명하다. 2006년 한국에 돌아와 LG에 입단한 것도 병석에 누운 아버지를 보살피겠다는 이유에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봉중근은 6회 교체된 뒤 덕아웃에서 기도했다. 일본전 승리와 함께 아버지의 건강을 비는 기도였지 않을까?
샌디에이고(미 캘리포니아주)=최경호 기자 squeez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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