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불법 자금 제공 사실을 조금씩 실토하기 시작해 검찰의 정ㆍ관계 로비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박 회장이 조세포탈 등 혐의로 지난해 12월 구속된 지 약 3개월 만이다. 검찰은 현역 의원들의 비리 혐의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박연차 게이트'의 서막이 오른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광범위한 추적, 입 여는 박연차
검찰은 최근까지도 박 회장의 금품제공 진술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직 (박 회장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있다"고 부인했다. 당사자를 추궁하기 앞서 계좌추적과 광범위한 주변조사를 통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게 옥죌 수 있는' 증거들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설명이었다. 검찰은 박 회장의 연고지인 김해 지역에 검찰 수사관들을 파견해 장기간 증거수집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축적된 증거들을 토대로 박 회장을 불러 추궁에 들어갔고, 그는 하나 둘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박 회장의 진술로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연구원장, 송은복 전 김해시장이 17, 18일 잇따라 체포됐다.
두 사람의 혐의 확인은 이번 수사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장이 250만 달러의 불법 자금을 받은 사실도 추가로 확인됐지만, 이는 순전히 계좌추적을 통해 해외계좌를 찾아낸 결과였다. 반면 이 전 원장, 송 전 시장은 모두 은밀히 현금으로 돈을 받았는데도 박 회장의 진술로 혐의가 확인됐다. 검찰은 박 회장에게서 금품제공 진술을 받아낸 뒤, 운전기사나 금품 전달자 등을 불러 증거들을 확보하고 피의자들을 체포할 수 있었다.
정치인들도 조만간 소환 예정
박 회장이 검찰에 협조하기 시작하면서 정치권에도 큰 회오리가 몰아칠 전망이다. 검찰은 "박 회장의 로비목록에 현역 국회의원이 있느냐"는 질문에 적극 부인하지 않았다. 이 전 원장과 송 전 시장을 구속하면,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쯤 또 다른 금품 수수자를 체포 또는 소환 조사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미 박 회장한테서 전ㆍ현직 의원들에게 불법 자금을 주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이를 입증할 주변 수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검찰과 정치권 안팎에서는 수많은 정치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광재 의원이 수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측근 C모 회장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이 의원은 "박연차 회장의 막내 딸이 내 사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어 잘못된 소문이 퍼진 것 같다"며 "불법 자금을 받은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박 회장의 주 활동무대인 김해 등 경남 지역 연고 정치인들의 이름도 여야를 막론하고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과거 박 회장에게 합법적 정치자금을 받은 적이 있는 전ㆍ현직 의원 20여명에 대해서도 불법 자금을 받은 사실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과 친분이 있는 전ㆍ현직 검찰 간부들도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그런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박 회장의 입에서 누구의 이름이 튀어나올지 장담할 수 없어 결과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검찰과 정치권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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