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공무원들이 택시운전에 빠졌다. 김문수 지사가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일일 택시운전사로 나선 뒤, 도청 및 도제2청 사무관(5급) 이상 고위공무원 41명을 비롯해 무려 109명의 공무원이 택시운전 체험에 나섰다.
전체 공무원이 3,000명인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수치다. 경기도는 이들이 모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말하지만, "인사권자 눈치보기의 전형"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적지 않다.
영하 3도의 꽃샘 추위가 몰아친 15일 새벽 4시 고양시 일산서구 외곽의 한 택시회사 사무실. 여느 때 같으면 택시 기사 10여명 만이 자리를 지켰을 이 곳에 업체 관계자와 외부 인사 등 70여명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이날은 김 지사가 수원, 의정부, 성남에 이어 올 들어 네 번째 일일 택시기사 체험을 하는 날이다.
행사를 위해 동원된 공무원은 줄잡아 10여명. 근접 경호팀과 상황실까지 꾸려졌다. 이들은 택시의 상태를 점검하랴, 사진촬영 등 홍보자료를 만들랴, 상황실에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랴, 택시를 타고 쫓으며 근접 경호하랴 정신 없는 휴일을 보냈다.
같은 날 수원의 교통연수원. 경기도 고위 공무원 A씨와 L씨가 책상에 앉아 강의 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택시운전을 위해 필요한 '운전종사자 직무교육'을 이틀째 받는 자리였다.
이미 필기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향후 LPG사용 운전자교육(22시간), 운전정밀검사(3시간) 등 험난한 여정을 밟아야 한다. 주로 주말을 이용한다 하더라도 업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도는 올해 말까지 꾸준히 신청자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27일 시험을 앞두고 틈틈이 공부한다는 K씨는 "'희망자를 모집해 민생 체험을 권장하라'는 김 지사의 지시에 동참하지 않을 경우 승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몰라 신청했다"며 "솔직히 정신 없이 운전하면서 어떻게 손님으로부터 민생을 파악해 보고서를 써야 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K씨는 일단 참가에 의의를 두고 사고 없이 무사히 체험을 완수하겠다는 생각이다.
또 다른 K씨는 "업무와 관련도 없는 일일 택시기사 체험에 나서는 동료들을 보면서 지금이 21세기인지 의심이 들 정도"라며 "'택시를 타야만 현장의 소리를 들을 수 있냐'고 볼멘소리를 하는 동료들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109명의 공무원들은 21일 4명을 시작으로 줄줄이 택시체험에 나설 예정이다. 도는 또 체험 공무원들을 중심으로 '택시 동아리'를 만들어 택시 지원시책도 개발할 방침이다.
이에 대해 시민 김모(35ㆍ고양시 덕양구)씨는 "김 지사야 정치인이니까 유권자들이 이해한다 하더라도 공무원들이 굳이 택시운전에 따라 나서야 할 이유가 있느냐"면서 "택시 체험은 택시 관련 업무 종사사들이나 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공무원도 "지사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행사인데 어느 간 큰 공무원이 나 몰라라 할 수 있겠느냐"라며 "참가 공무원들 중 상당수가 승진에 미칠 영향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는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기 위한 공무원들의 자발적인 민원 발굴이라는 입장이다. 도 관계자는 "일각에서 전시성 행사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만, 20여 개 부서에서 민생을 직접 체험하겠다며 자발적으로 체험을 신청했다"면서 "일일 택시기사 체험에 관심이 있는 신청자 수가 예상을 웃돌아 상당히 고무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사진=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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