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의 최대 장점은 점수화 하기 어려운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해 숨은 인재를 발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점수 따지는 일반 전형이었다면 고배를 마셨을 '진흙 속 진주'가 눈 밝은 사정관들의 마음을 움직여 빛을 본 경우가 적지 않다.
건국대 인문학부에 합격한 박은경(19)양은 학생부 성적이 다소 부족했지만, 역사학이라는 한 우물을 판 결과 잠재력을 중시하는 입학사정관들의 눈에 들었다. 박양의 꿈은 '조선왕실문화사를 전공하는 규장각 연구원'. 고교 3년 때 경기 광주의 조선 실학자 안정복 유적지를 답사해 논문을 내고, 시청에 건의해 유적지에 안내판을 설치하게 하는 등 발로 뛰는 향토사학자나 다름 없었다.
박양은 1박2일 간 진행된 대입 심층면접에서도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단연 두드러졌다. 조별 토론에서 '수월성 교육이냐, 평등 교육이냐'는 주제가 제시되자, 다른 조원들은 "핀란드 교육을 배워야 한다" "프랑스 바칼로레아를 도입해야 한다"는 등 '학원풍' 짙은 답을 내놓았다. 박씨의 대답은 이랬다. "고려시대에도 사학 12도라 하여 사교육이 융성하는 등 입신양명을 중시하는 우리 역사 속에서 사교육은 혼재했다. 고려 예종이 관학의 융성을 꾀하기 위해 만든 국가장학재단 '양현고' 같이 국가적으로 해결하는 노력이 일단 필요하다." 면접관들 사이에 "사학과 3,4학년보다 낫다. 홀딱 반했다"는 탄성이 나왔다.
아픈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윤모(19)군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불구하고 북극과 온난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키워왔다. 2006년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북극연구체험단 선발 과학수필대회' 대상을 수상, 8박9일간 북극에 다녀왔다. 지구 온난화 방지 활동으로 교육부에서 21세기 우수인재상도 수상했다. 윤군은 성균관대 자연과학계열에 지원했는데, 내신 성적이 많이 떨어져 합격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사정관들이 부모의 '인프라'를 이용하지 않고 스스로 꿈을 키워온 윤군의 열정을 인정,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김모(19)군도 과학고 출신이지만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았다. 2006년 할아버지의 뇌경색 투병을 계기로 신경ㆍ혈관세포에 푹 빠진 김군은 이 분야 연구를 한다며 학업은 사실상 손을 놓은 결과였다. 그러나 김군은 평소 목표했던 연세대에 지원했다. 면접 당시 입학사정관 앞에서도 "자석을 이용한 인간 신경세포 돌기의 방향성 유도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곧 SCI 학술지에 게재될 것"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사정관은 "내신 성적보다는 열정을 믿었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강희경기자 kbst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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