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미리 시행한 것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매몰돼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했을 뿐 아니라, 만에 하나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 경우 엄청난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기획재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는 4월 임시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이 확실히 통과되는 것을 전제로, 지난 16일부터 여러 주택을 소유한 1가구 다주택자(비업무용토지 포함)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고 1주택자와 똑 같은 세율(일반 과세)로 전환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야권과 학계의 반발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비판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문제가 시급하고 타당성이 있는지 4월 임시국회에서 검토하겠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국회 소관상임위인 기획재정위원회 서병수(한나라당) 위원장도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조치를 시행한 지 불과 2개월여만에 효과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중과세를 아예 폐지하고 더구나 국회통과를 전제로 미리 시행한다는 것은 말이 되질 않는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야권의 반발은 더욱 거세다. 민주당의 대표적 세제통인 이용섭 의원은 "의석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 의석수만 믿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이 문제"라며 "국회 입법권을 무시한 것으로 삼권 분립 정신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같은 당 오제세 의원도 "(세율을 바꾸는 것은) 입법 사항인데 이를 행정조치로 시행하는 것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지금까지도 시장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세제개편의 경우, 대책발표 시점에 맞춰 먼저 시행을 하고 추후 법 개정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율이 낮아질 때까지 부동산 거래가 뚝 끊기는 부작용을 차단하기 위해선 법 개정 전 조기시행이 불가피하다는 것.
지난해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올해 미분양주택 양도세 감면 조치도 같은 방식이었다는 설명이다. 윤영선 재정부 세제실장은 "이미 충분한 당정 협의를 거쳤기 때문에 일부 의원이 반대를 해도 국회 통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법이 국회를 통과하지 않는 경우는 가정을 해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관행과 인식 모두 문제라는 지적이다. 세율 조정은 헌법이 정한 국회 고유 권한(조세법률주의)이다. 설령 당정협의를 거쳤다 해도 행정부가 헌법 기관인 국회의원 개인들의 표결성향을 예단해 마음대로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은 헌법 정신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정종섭 서울대 교수(헌법학)는 "현행 법이 있는데 앞으로 통과될 법을 예상해서 양도세를 완화해 걷는 것은 문제가 있으며 이는 공무원의 위법한 행위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이 만에 하나 4월 국회에서 세법개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는다면 엄청난 혼란이 올 수 있다. CCR법률사무소 황세동 변호사는 "당장 정부 정책에 따라 일반세율로 집을 판 이들에게 양도세를 추가 징수해야 한다"며 "양도세를 일반 과세한다는 정부 정책을 믿고 거래한 이들에게 보상을 해줘야 하는지를 두고 행정소송까지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더구나 자동차개별소비세 인하 등과는 달리, 양도세 중과 폐지는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붙어 있는 사안이다. 부동산경기를 위해선 중과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부동산투기 재발우려가 큰 만큼 규제를 풀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처럼 논란이 뜨거운 만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뜨거운 토론과 정밀한 심의를 거치는 것이 타당한데도, 정부는 여당 의석수만 믿고 강행한 것이다.
차제에 법 통과를 전제로 미리 시행하고 보는 정부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는 "법 개정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법 개정도 되기 전에 시행하는 것은 분명 논란거리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문향란 기자
김회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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