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 'Fuck you money'라는 말이 있다. 표현은 좀 거칠지만, 멋대로 펑펑 쓰고 살만큼은 안 돼도, 월급에 목매지않고 새로운 직업을 선택할 자유를 줄 만큼은 되는 돈이다. 그것은 돈에 영혼을 파는 것을 막아주며, 외부의 권위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준다. 유혹의 전화를 단호히 끊어 버리기 전에 이 함축적인 말(Fuck you)을 내뱉을 수 있는 유쾌한 능력을 상징한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베스트셀러 <블랙 스완ㆍthe black swan> 에 나오는 얘기다. 블랙>
최근 공직에 있는 선배,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다 국내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 선배와 저녁자리를 하면서 두런두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했다. 공직에 있는 선배가 "이제 10년도 안 남았네"라고 운을 뗐다. 고시에 붙어서 공직에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자신만만했는데 어느덧 퇴직할 날이 가까워 졌다는 뜻이었다. 그나마 정년을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교직에 있는 선배는 "나는 정년이 65세니 15년은 남았지만 그전에 쫓겨날 수도 있어서 준비를 미리 하려고 한다"고 응수했다. 하지만 두 선배 모두 은퇴후 무엇을 해야할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했다.
이날 대화의 핵심 주제는 "도대체 재산이 얼마정도 있어야 남은 인생을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였다. 다들 집 한 채 달랑 갖고 월급으로 자식들 교육시키는 형편이라 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산다고 했다. 그리고 모은 재산 없이 은퇴하면 노후는 어떨까를 두려워했다. 다들 "집 빼고 '+ α'가 있으면 버틸 수 있을 텐데"라고 입을 모았으나 '+ α'의 범위에는 제법 편차가 있었다. 하지만 무슨 재주로 원하는 만큼 재산을 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정답이 나올 리가 없었다.
통상 이런 자리 끝에는 "누가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를 해서 얼마를 벌었다더라"는 '샐러리맨 신화'가 나올 법도한데 추락하는 경제 탓에 '신화'는 자취를 감췄다. 우리 사회에서 이들 정도라면 중상위층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에 늘 미래에 대한 부담을 갖고있다고 했다. '로또 밖에 기대할 것이 없다면 막장 인생'이라지만 사회 지도층에 속하는 이들도 로또 대박을 꿈꾼다고 했다. 물론 "형편이 더 어려운 사람들은 오죽할까"라는 걱정도 잊지 않았다.
속이 뒤틀릴 때 시원하게 사표를 던질 능력을 갖추는 것이 샐러리맨의 소박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을 때 여유롭게 훌훌 털고 전직을 할 수 있을 정도도 괜찮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월급봉투로부터 자유로워야 가능한 일이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런 '유쾌한 능력'을 갖춘 동료들은 보이지 않는다. 편차는 있지만 대개 그리 풍족하지 못한 인생을 산다. 더구나 많지 않은 월급이지만 이를 받지않고 몇 달간이라도 버틸 재간은 없다.
얘기는 다시 부자들 주변으로 흘러갔다. 다주택 보유자의 양도소득세 중과폐지 조치를 취한 구제불능의 '강부자' 정부에 대한 비판을 필두로, 우리 사회도 '상위 20%가 부의 80%를 소유한다'는 파레토 법칙의 예외일 수 없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하지만 결론은 엉뚱했다. "미래를 통제할 수 없다면 현재를 최대한 즐겨라." 그날은 샐러리맨들이 술독에 빠진 날이었다.
조재우 경제부차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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