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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주주자본주의

입력
2009.03.1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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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현 SK에너지)가 SK글로벌(SK네트웍스)에 출자전환하는 것은 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마땅히 철회돼야 한다. SK㈜는 SK글로벌 청산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소버린자산운용의 재정자문사인 라자드아시아 오호근 회장은 2003년 6월 25일 기자회견을 갖고 "SK㈜ 이사진이 SK글로벌 지원을 최종 결의한다면 임시주총을 열어 새 이사진을 선임하는 등 법적 대응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 소버린은 2003년 초 SK㈜ 주식을 야금야금 매집해 제1대 주주로 급부상한 후 SK측에 경영진 퇴진, 주주이익을 해치는 계열사 지원 반대 공세를 펼쳤다.

▦모나코에 본사를 둔 투기자본 소버린이 SK를 기습해 대주주가 된 목적은 단순했다. 당시 SK글로벌 분식회계로 주가가 떨어진 SK㈜ 주식을 사들인 후 경영진을 압박해 주가가 오르면 차액을 남기고 떠나려는 헷지펀드의 성격이 강했다. 회사 성장을 위한 장기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풍랑을 만난 계열사를 도와줘 동반 성장하는 것은 한국식 그룹경영의 특징이자 대주주의 사회적 책임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버린은 지주회사격인 SK㈜가 계열사에 손을 내밀면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투기자본이라는 비판에 대해선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소버린은 SK 공략 이후 2년 4개월 만에 1조원의 차익을 챙긴 후 유유히 사라졌다. 장기투자 공언은 식언에 그쳤다. 목표를 달성하자 주저없이 철수했다. 투기성 외국자본의 폐해를 뚜렷이 보여준 것이다. 소버린의 공세로 SK가 이사회 중심 경영 등 투명경영 장치를 도입한 것은 비싼 수업료를 내고 얻은 성과다. 하지만 SK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투자에 써야 할 유보금등을 자사주 매입과 주주 배당 확대에 투입하는 등 전력 소모를 많이 했다. 소버린사태는 회사를 주주의 소유물로 보고 경영자는 주주이익 극대화에 힘써야 한다는 월가식 주주자본주의 문제점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다.

▦미국기업의 주주가치 극대화를 선도했던 잭 웰치 GE 전 회장이 최근 월가의 몰락을 가져온 주주자본주의를 통렬히 비판했다. 웰치는 "주주가치를 최고경영자의 주요 목표로 삼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강조했다. 주주가치는 경영진과 종업원 등 기업구성원들이 합작한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게 그의 뒤늦은 자기반성이다. 주주자본주의의 쇠퇴는 주주가치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멀리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경영을 통해 이해관계자 모두의 동반성장을 추구하는 것이 더욱 중요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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