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회 법사위는 원래 대법원의 재판개입 파문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였다. 그러나 회의는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이 신영철 대법관의 이메일을 공개한 법관들의 처벌을 거론하면서 갑자기 ‘좌파 판사’ 성토장이 됐다.
검찰 출신 한 의원은 “의견이 관철되지 않았다고 외부 세력을 동원해 사법권 독립을 침해했다면 법관윤리 위반 아니냐”며 유출 경위를 따졌다. 역시 법조인 출신인 다른 의원은 “평생을 정의의 화신처럼 살아온 대법관의 사퇴를 종용하는 음모가 있다”고 거들었다. 최근 발언에서 드러난 한나라당 지도부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제쳐둔 채 잘못을 지적한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 것, 우리 사회에서 내부 고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자주 보아왔던 익숙한 풍경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쳐다본다. 이들은 흔히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조용히 해결해야지 외부의 힘을 빌리려 하면 되느냐’고 한다. 소위 ‘조직 배신론’이다.
내부의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라면 이런 문제가 터져 나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반론을 이들은 애써 외면한다. 대법원이 애초 ‘촛불재판 몰아주기 배당’ 의혹이 불거졌을 때 “별 문제 없다”고 덮으려 했던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메일이 공개되지 않았더라면 사건은 그대로 묻혀버렸을 것이 분명하다.
설사 이메일 유출자를 조사해본들, 이메일 자체가 보안등급이 매겨진 문건도 아니고, 부당한 간섭을 바로잡으려는 공익적 목적이 있었기에 그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좌파 판사’ 운운하며 내부 고발자를 처벌하라고 사법부를 압박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어쩌면 이들은 애당초 저 달이 둥근지 이지러졌는지는 관심조차 없었던 게 아닐까.
이영창 사회부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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