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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51> 집회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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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51> 집회의 자유

입력
2009.03.18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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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1990년대부터 낙태 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아마도 낙태 문제 만큼 미국 사회에서 찬반론이 극렬하게 맞붙어 대립하는 사안도 보기 드물 것이다.

우선 낙태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그룹이 있다. 이들은 임신은 하나님이 내려준 생명의 은혜이며, 태내의 살아있는 생명체를 죽인다는 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주로 천주교 신부들과 교회 장로들,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이 그룹에 속한다. 이 주장은 통상 생명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pro-life라 부르며, 공화당 출신 정치가들은 대체로 pro-life다.

반면, 낙태는 임산부의 선택이며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강제로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법은 반인도적, 반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있다. 주로 진보적인 여성 단체들과 변호사 같은 전문직 여성 등이 이런 주장을 편다.

민주당 출신 정치인들 대부분은 낙태는 여성의 선택이란 뜻에서 통상 pro-choice 로 불리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정치인들은 어느 쪽 편을 들건, 편을 든 그 순간부터 한번에 수백만 명의 강력한 정적이 생기게 된다.

이처럼 낙태 문제가 사회적으로 첨예한 쟁점이 되다 보니, 이 문제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는 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늘 관심을 끈다. 대통령 선거 때면 후보들은 당선될 경우 어떤 인물을 대법관으로 임명할지에 대해 언론은 물론 각종 사회 단체들로부터 집요한 추궁을 받는다.

또 대법관들 스스로도 이 문제가 갖는 사회적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가령 공화당 소속 대통령 재임 중에는 진보 성향 대법관이, 민주당 소속 대통령 재임 중에는 보수 성향 대법관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절대 은퇴하지 않는 것이 관례처럼 돼 있다.

현재 5대4로 합법화 돼 있는 1973년의 대법원 낙태 관련 판결 (Roe vs. Wade) 이 대법관 인적 구성 변화로 인해 번복될 소지를 없애기 위한 것임은 물론이다.

캘리포니아 주 다이아몬드시 시장으로 재직할 때 일이다. 낙태에 찬성하는 그룹(Pro-life) 들로부터 내가 재직 중인 도시 중심부의 시립공원에서 시위를 하겠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시위대는 약 1,000 명, 어디까지나 평화적 시위이며 확성기로 시끄럽게 소리지르는 일은 없을 것이고, 시위가 끝난 뒤에 있을 시가행진까지 모두 합쳐 3시간이면 끝날 것이란 제안이다.

집회는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려면 그 이유가 뚜렷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헌법 위반으로 법원에 제소되기 십상이다.

다만 시의 법에 의해 어떤 집회든 반드시 사전에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이 경우 시 의회 과반수의 동의가 필요하다. 아울러 집회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집회 주최 측에서 책임을 져야 하며 우선 25% 정도 선불을 내던가, 아니면 전체 비용을 담보로 하는 시 본드(municipal bond)를 사야 한다.

그런데 이 비용이 결코 만만치 않다. 예를 들면, 우선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들의 오버타임 인건비, 사고가 났을 경우에 대비해 대기하는 경찰관과 형사들의 오버타임 인건비, 쓰레기와 도로 청소비, 그 밖에 공공기물 파손(Structural Damage)이 발생할 경우 보수 비용 등이 포함된다.

나는 종종 이 비용을 과장해서 시위대가 우리 도시를 포기하고 다른 데로 가도록 유도했다. 하지만 그 비싼 비용을 내고도 기어코 시위를 강행할 경우에는 사전에 모든 시민들에게 시위 날짜와 시간을 알리고, 현장의 교통혼잡을 피해 우회할 수 있는 지도 등 관련 정보를 배포한다.

시위가 있는 날은 마치 시가전이라도 벌어지듯, 아침 일찍부터 경찰 병력이 총동원돼 이곳 저곳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해놓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다.

공중에는 경찰 헬리콥터가 빙빙 돌고 주요 골목 마다에도 경찰이 배치되고, 사복경찰들은 여기 저기 군중들 틈에 끼어 든다. 시위가 시작되면 반드시 도로의 반은 교통을 위해 열어 놓고, 경찰은 시위대의 행렬을 포위하듯 완전히 둘러싸고 따라간다.

시위대 맨 뒤에는 앰뷸런스와 말썽 부리는 사람들을 잡아 실을 경찰 감옥차가 따라가는 등 정말 가관이다. 도로 청소차도 바짝 따라가면서 시위대가 지나친 현장을 곧바로 깨끗이 닦아 놓는다.

시위가 특히 자극적인 이슈, 예를 들면 흑백 인종 문제와 관련한 것일 경우에는 경비가 더욱 삼엄하다. 이에 따른 비용은 물론 주최 측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

시위는 대체로 어떤 특정 집단의 믿음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래서 가령 낙태 문제와 관련한 시위는 내가 재직한 시와는 별로 관계가 없는 행사여서 관련 비용은 행사 주최 측이 모든 비용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이 옳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돈이 없으면 시위도 못 한단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돈이 없으면 돈이 전혀 들지 않는 방식으로 시위를 하면 된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공공기물을 파괴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교통도 방해하지 않고, 플래카드를 들고 인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조용히 자기의 의견을 표현하면 된다.

미국 헌법에는 네 가지 가장 중요한 인간의 기본권리가 규정돼 있다.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집회의 자유다. 그런데 오직 집회의 자유에만 조건이 붙어있다. 바로 평화적 집회가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어떤 시위나 집회도 가능하다. 다만 절대로 평화적이어야 하고, 주최측이 관련 비용을 전액 부담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미국을 질서 있는 사회로 이끌어 온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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