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대법관 재판 개입 의혹 파문이 일단락됐다.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집중 배당하고, 판사들에게 수 차례 전화나 이메일로 보석 결정에 신중하라고 하거나 재판 진행을 독촉한 행위가 모두 부당한 재판 개입으로 결론지어졌다. 신 대법관의 자진 사퇴 여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은 것은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진상조사단 조사결과를 토대로 그에 대한 징계 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뿐이다.
마무리가 중요한 '신영철 사건'
그러나 한 개인의 징계나 자진 사퇴가 이번 파문의 끝맺음이 될 수는 없다. 헌법이 보장한 재판과 법관의 독립을 훼손한 이번 사태가 그만큼 엄중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사회 각 분야의 어떤 조직보다 도덕성이 높은, 건강한 집단이다. 도덕성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절대 기준은 없지만 상대적으론 분명 그렇다. 법원 조직의 건강함은 법관을'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독립기관으로 규정한 헌법에서 나온 것이다. 법관들이 나이, 성별, 출신 지역ㆍ학교에 상관없이 서로 인격과 의견과 재판결과를 존중하는 법원 문화는 그런 법적 토대 위에서 형성됐다. 그것이 법원을 지탱하는 힘이고, 그 힘의 원천인 국민 신뢰와 지지를 얻는 기반이다.
법원은 이번 위기 국면에서 '법관의 양심'으로 조직의 도덕성과 건강성을 곧추 세우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물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현실적 제약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법원이 상대적으로 도덕적 우위를 점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 점은 다행이다. 법원이 법정의를 지키고 구현하는 사회의 마지막 보루라는 인식마저 위태롭게 된다면 피해자는 기댈 곳 없어진 국민일 것이다.
진상조사단이 신 대법관의 행위가 모두 정당한 사법행정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었다고 결론지었다면 어땠을까. 고위 법관과 소장 판사로 나뉘어 법원 내 세대간, 상하간 대립과 갈등은 깊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부의 이념적 색깔 공세까지 더해져 사법부와 우리 사회는 심각한 후폭풍에 휩싸였을 것이다.
사법부는 지금까지 4차례 사법 파동을 거치며 과거보다 진일보한 조직으로 거듭났다. 비록 사법 파동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이번에도 사법부는 성장통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어떻게 끌어안느냐에 따라 성장통은 약이 될 수도, 병이 될 수도 있다.
사법부로서는 재판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 급하다. 내부의 부당한 재판 개입을 차단할 수 있도록 규정을 정비하고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신 대법관의 재판 개입 파문 이후 사분오열된 내부 분위기를 추스르고 법관들의 명예와 자부심을 되살리는 일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사법부 구성원 모두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공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는 법원 내외부의 적을 분명히 규명하고, 그 적을 타파할 수 있는 실질적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작금의 사태를 지켜본 국민의 요구다.
이번 파문에서 드러났듯이 고위 법관과 소장 판사들은 재판에 관한 인식이나 자세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법관 개인의 독립성을 인정하면서 그 차이를 좁히기란 쉽진 않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관료인가 법관인가 엄한 자성을
과거 고위 법관 중에는 정치적 외압에 맞서 싸우던 소장 판사 시절의 소신을 접고 권력에 굴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고위 법관들은 법원장이나 대법관이 되려고 사법부 내외부 권력의 눈치를 보거나 법관으로서의 소신을 접은 적은 없는지, 재판 개입으로 비칠만한 언행을 한 적은 없는지 돌아보라.
소장 판사들도 관료화의 유혹 때문에 법원장의 압력이나 민원을 외면하지 못한 적은 없는지 살펴 보라. 촛불집회처럼 대형 시국 사건이 아닌 일반 사건 재판에서도 법원장의 재판 개입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을지 자문자답 해보라.
관료화에 관한 엄격한 자기 성찰로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사법부에 더는 기대할 게 없을 것이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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