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건 하나도 없다. 한 신인 탤런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자살 이유로는 이른바 '성상납'이 제기된다. 그리고, 늘 그렇듯 관계자들은 부인한다.
불타버린 문서의 내용은 확인할 방법이 없고, 거론된 당사자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 주장하니, 고 장자연의 문서에 남겨진 성상납 논란 역시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사건 뒤에도 연예계 성상납 소문은 사람만 바뀌어 떠돌 것이다. 이는 한국 연예 매니지먼트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고 장자연이 남긴 문서에 따르면, 그는 매니지먼트사의 대표에 의해 성상납을 강요당했다. 문서 내용을 사실로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연예 매니지먼트는 회사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 신인 연예인을 키우고, 그만큼의 소득을 기대한다. 그러니 소속사의 톱스타가 출연하는 작품에는 신인들을 '끼워팔기'로 넣어서라도 얼굴을 알리려고 한다.
한국에서 연예인이 소속사를 떠날 때마다 '의리'니 '배신'이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는 회사대로 투자한 것이 아깝고, 스타는 스타대로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에게 집중해줄 곳을 찾는다.
이런 상황에서 신인 연예인은 가장 약자가 된다. 로비를 통해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키고픈 일부 연예 매니지먼트사는 그들을 이용한 로비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들에게 신인 연예인은 성공을 담보로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는 착취 대상이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미국은 에이전트 제도가 자리잡아 회사 단위의 성상납이 이뤄질 여지를 줄였고, 일본은 몇몇 대형 기획사가 연예계를 장악해 역설적으로 회사가 로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들도 완전히 깨끗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국에 비해서는 구조적으로 안정된 틀을 가진 것이다.
반면 한국은 에이전트 제도도 없고, 대형 기획사들이 연예계를 좌우하지도 않는다. 연예 매니지먼트 산업의 틀이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부정한 로비가 끼어들 여지가 많은 것이다.
물론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하루 아침에 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고 장자연 사건 같은 일을 막으려면 새로운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필요한 건 분명하다. 그 점에서 최근 몇몇 톱스타들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1인 회사'를 차린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의 성공 여부에 따라 연예인 개인이 중심이 된 매니지먼트 모델이 자리잡을 수도 있다. 부디 신인 연예인도 어느 회사에서든 '사람' 취급 받을 수 있는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만들어지길 바란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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