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백악관과 의회의 거물들이 15일 TV 카메라 앞에 총출동했다. 경제위기와 처방에 대한 입장을 국민에게 직접 밝히기 위해서다. 백악관을 대표한 측에서는 미국 경제의 앞날에 신중하면서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반면, 야당인 공화당 인사들은 버락 오바마 정부가 경제위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은 ABC의 시사프로 '디스 위크(This Week)'와 CBS의 '페이스 더 네이션(Face the Nation)'에 잇따라 출연했다. 크리스티나 로머 경제자문위원장은 NBC의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에 모습을 드러냈고, 경제회복자문위원회의 오스탄 굴스비 사무국장은 폭스뉴스의 '폭스뉴스 선데이'와 인터뷰를 가졌다. 반면 공화당에서는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대표가 ABC의 '디스 위크'에 나와 백악관 저격수를 자처했다.
이날 '릴레이 언론플레이'의 하이라이트는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CBS방송 대담 프로인 '60분'에 출연한 것. FRB 의장이 TV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1987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의장이 NBC의 '언론과의 만남'에 출연한 이후 처음이다. 버냉키 의장의 출연은 발언의 민감성을 고려해 전날 녹화가 이뤄졌다.
버냉키 의장이 왜 TV에 나왔는지는 진행자의 농담 섞인 질문에서 드러났다. 진행자인 스콧 펠리 기자가 "1년 전 인터뷰 요청을 했을 때 FRB측은 '의장은 인터뷰를 절대 하지 않는다'며 웃어넘겼는데, 왜 응했느냐"고 묻자 버냉키 의장은 "비상시국이다.
비상시국이기 때문에 국민에게 직접 얘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아버지가 잡화점을 했던 과거를 언급하며 "나는 실물경제 출신이다. 월가에는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고 한 뒤 "내가 월가에 관심을 갖는 유일한 이유는 월가가 메인스트리트(실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버냉키 의장은 장기적으로 미국경제에 신뢰를 표시하며 "금융이 안정된다면"이라는 전제 하에 "올해 위기가 끝나고 내년이면 회복기에 접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버냉키 의장은 이날 출연에서 개인사를 여러 차례 언급해 또 한번 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그는 10대 후반에 하버드대에 진학하면서 부모와 멀리 떨어지게 되자 어머니가 매우 걱정했으며, 학비를 벌기 위해 식당 종업원으로 일할 때 근면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최근 몇 달 동안 경제 문제 때문에 며칠 밤을 사무실 소파에서 보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워싱턴포스트는 "버냉키의 출연은 국민에게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례 없는 경제위기에 미국민이 정부의 처방을 믿고 힘을 합쳐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이다.
이에 대해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는 "우리를 위기에 빠뜨린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을 하기 위해 그들(오바마 정부)이 위기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AP통신은 피터 오재그 백악관 예산실장이 "기초체력에서 (미국) 경제는 약하다"고 진단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백악관 수뇌부들이 미국 경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시소(seesaw)"라며 최근 며칠 뉴욕증시가 급반등한데 대해 지나치게 고무된 결과일 수 있다는 해석을 전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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