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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테렐지 숲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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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테렐지 숲에서 생긴 일

입력
2009.03.1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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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다리가 묶여 온 짐승은 말간 눈을 뜬 채 숲속의 우리를 보고 매애거렸다 그러나 익숙한 솜씨의 칼잡이가 망치를 들고 다가가자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마지막 애처로운 비명을 질렀다. 정수리에 일격을 가하자 염소는 묶인 다리를 심하게 떨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칼잡이가 재빨리 내장을 열어 염소의 숨통을 끊어주었다. 그리고 그 동안의 수고였던 가죽옷을 벗겨내고 풀냄새가 자욱한 腸들을 꺼내고 조금 전까지 우리를 보고 있던 말간 눈을 감겨주었다. 그리고 숲은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분주해졌다.

동유럽 어느 수도원에 참회를 하러 온 어느 가족이 가난한 수도원을 위해 양 한 마리를 끌고 오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무슨 일상의 죄가 있었던지 가족은 하나씩 작은 참회의 방에 들어가 있다가 불그스럼하게 변한 눈을 닦으며 나왔다. 그리고 축제는 시작되었다.

도살된 양은 위 시에서 나오는 염소처럼 도살되었고 마지막으로 양머리는 수도원 근처에서 자란 허브를 가득 넣은 끓는 물로 던져졌다. 그 가족과 함께 들을 넘어 개울을 넘어 같이 온 양은, 가족들과 함께 들과 강과 꽃을 보았을 양의 눈은, 끓고 있는 국 속에서 그 가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숲'이라는 시정에서는 다시 고기가 지글거리고 참회도 속죄도 하릴없다는 듯 일상은 양머리가 들어간 국처럼 마냥 끓는다. 그 생각이 들 때마다 이시영의 시에 나오는 염소의 눈에 맺힌 지구를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남을 먹어야만 살아남는 존재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연이 우리를 먹을 것이다. 옳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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