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 '신두 사구(砂丘)'는 오랜 세월 자연이 빚어낸 국내 최대 규모의 모래 언덕이다. 3.4㎞ 길이의 해안선을 따라 폭 500m∼1.3㎞ 규모로 형성된 이 사구는 해류가 육지로 밀어 올린 굵은 모래를 바람이 곱게 빻아 만들어 낸 걸작이다. 모래 언덕은 바다와 육지가 만나는 곳에 쌓이는 퇴적물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줌으로써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신두 사구는 특히 바람 자국처럼 사막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과 해당화 군락 등 생태학적 가치 때문에 2001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됐다.
▦해안선을 따라 조금만 남하하면 안면도다. 안면도 서쪽 해안에도 8,000~1만년의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사구 지대가 있다. 이 모래 언덕도 한때는 20여㎞나 됐지만 방파제 도로 등이 무분별하게 건설되면서 상당 부분 훼손됐다. 지금은 삼봉 해수욕장에서 두여 해수욕장에 이르는 5.5㎞ 구간에서만 모래 언덕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곰솔(海松) 갯메꽃 갯완두 해당화 등 염생(鹽生) 식물이 자라고, 내륙 쪽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저수지에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수련(睡蓮) 군락지가 있다. 안면도는 바다와 육지가 함께 만든 생태계의 보고다.
▦안면도의 허리 밑쯤에 '꽃이 피었다 떨어지는 자리'라는 예쁜 이름의 꽃지 해수욕장이 있다. 모래 언덕과 울창한 송림, 할미바위와 할아비바위 사이로 장엄하게 떨어지는 석양이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2002년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개최에 대비해 해수욕장 주변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세우고 해변 도로를 개통하면서 모래 언덕과 주변 생태계가 많이 훼손됐다. 7년이 지난 올해 4월 24일, 이곳에서 27일간의 일정으로 국제 꽃박람회 행사가 '꽃, 바다, 그리고 꿈'을 주제로 다시 열린다. 79만 3,300여㎡의 부지에서 57종 1억 송이의 꽃이 내방객을 맞는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는 국내 화훼산업 발전이 목적이지만 올해 행사는 2007년 12월 해상 기름 유출 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태안 지역의 재도약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 7년 전 세계적 행사 개최를 이유로 자연생태계를 거침없이 훼손했던 그 장소에서 인간의 실수가 초래한 대재앙의 치유를 위해 같은 행사를 다시 여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럼에도 안면도로 눈길이 쏠리는 것은 아직도 여전한 이 지역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100만 자원봉사자의 구슬땀이 태안의 기적을 일구었듯 이젠 100만 관광객의 발길이 태안 주민을 위무할 차례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