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에 걸친 내전으로 7만5,000명이 희생된 중미 엘살바도르에 좌파 무장게릴라 출신 정권이 들어서게 됐다.
AFP통신 등 외신은 엘살바도르 선거관리위원회가 1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90% 이상 개표가 이뤄진 가운데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전선(FMLN)의 마우리시오 푸네스(49) 후보가 51.25%를 득표, 집권 민족공화연합(ARENA)의 로드리고 아빌라(44) 후보를 근소하게 앞선 것으로 발표했다고 보도했다. 선관위의 발표에 푸네스 후보는 승리를 선언했고 FMLN 지지자들은 수도 산살바도르 시가지로 나와 승리의 기쁨을 나눴다. 반면 아빌라 후보는 어떤 논평도 내지 않고 있다. 공식 결과는 이번 주말 발표될 예정이다.
엘살바도르는 ARENA가 집권한 지난 20년 동안 중ㆍ남미 국가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베네수엘라, 니카라과에 좌파정권이 들어서면서 엘살바도르는 미국의 중미 요충지이자 마약퇴치 전쟁의 전진 기지로 중요 역할을 했다. 엘살바도르 입장에서도 인구의 4분의 1인 250만명이 미국에서 돈을 벌어 송금하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
ARENA는 선거 기간 동안 "FMLN이 집권하면 대미 관계가 악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미국 이민자 4만여명이 이에 호응, 본국으로 돌아와 선거에 참여했다. 하지만 유권자는 ARENA 집권 20년 동안 경제정책에서 비교적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거대 마약 카르텔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 것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FMLN을 선택했다.
FMLN은 1992년 내전 종식 이후 처음으로 비게릴라 출신 후보를 내세우는 전략을 통해 중도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방송 기자 출신으로 내전 당시 좌파 지도자들과 인터뷰하고 우호적인 보도를 내보내 좌파 세력과 친숙한 관계를 유지했다. 대선 기간 동안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같은 극단적 반미주의보다는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 이그나시오 훌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의 정책을 따르겠다며 유권자를 안심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엘살바도르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더라도 기존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혀 집권 후 중미에 등장한 첫 좌파정권과의 관계 정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FMLN에 대한 거부감을 표시했었다.
개인적 인기보다는 ARENA에 대한 반감을 업고 집권에 성공한 푸네스에게는 안팎으로 만만치 않은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FMLN은 1월 총선에서 전체 84석 가운데 35석을 확보, 제1당으로 부상했으나 32석을 확보한 ARENA를 축으로 한 우파가 여전히 의회의 다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게다가 FMLN의 게릴라 출신들이 푸네스의 지휘를 호락호락 따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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