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밤 서울 지하철2호선 신촌역 지하도. 바삐 오가는 행인들 사이에서 20대 남자가 "최신 DVD가 넉장에 만원! '워낭소리'도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불법 DVD를 팔고 있었다.
잠시 후 이를 멀리서 지켜보던 40대 남자 2명이 다가가 "당신은 저작권법 제136조 저작권자 권리를 침해한 혐의가 있으므로 관련 물품을 압수하겠다"고 말하자, 상인은 "경찰 맞냐"며 시비조로 물었다.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특별사법경찰관"이라며 신분증을 제시했다. 상인은 그제서야 "그게 아니고…"라며 자세를 낮췄다.
행정 공무원이지만 단속과 수사 등 경찰 업무를 수행하는 '특별사법경찰관'(특사경)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식품위생, 원산지표시, 청소년 위해업소 등에서 불법 저작물까지 영역이 확장되면서 무늬만이 아닌 어엿한 '경찰'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특사경의 효시는 1949년에 대통령령으로 당시 내무부 안에 창설된 철도경찰대(현재의 철도 공안). 관련 법률은 56년 제정됐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농수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 13개 정부 부처에서 8,199명의 특사경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민생 분야에 특사경 제도를 적극 활용하면서 아예 별도 부서를 창설하는 것이 붐을 이루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해 1월1일 80여명 규모로 특사경을 신설한 것을 필두로 인천, 대구, 부산, 충남, 대전 등이 잇따라 부서를 만들었다. 서울시 특사경의 경우 지난해 160건을 입건, 157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사경의 장점은 전문성을 갖췄다는 점. 해당 업무를 맡아온 행정 공무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5년차 철도 공안 오은석(33)씨는 "차량 안에서 발생하는 강ㆍ절도 등 사건 처리는 물론, 안전과 관련해 차량과 레일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어도 몇 년 안에 보수가 필요하다는 판단까지 나온다. 철도 치안에 관한 한 우리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였다.
실제 철도공안 서울사무소는 지난해 11월 의정부의 한 건널목에서 차단기 오작동 신고를 받고 출동, 선로와 선로를 잇는 레일본드선 14개가 절단된 것을 확인하고 폐쇄회로(CC)TV를 통해 증거를 확보, 이틀간 잠복 끝에 범인 김모(25)씨를 검거했다.
수사기법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활동을 시작한 문화부 특사경은 지난 5일 온라인상 불법저작물을 상습 유통시킨 헤비 업로더 61명을 적발, 이중 39명을 불구속 송치했다.
특사경 채규태(46)씨는 "적발 과정에서 통신사 측에 요청, 유통자의 IP를 추적하기도 하고 현장 적발을 위해 잠복도 했다"며 "이 정도면 경찰과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애로도 적지 않다. 지자체 특사경은 대부분 제복이 따로 없다 보니 단속 현장에서 "가짜 경찰 아니냐"는 항의를 받기도 한다.
세무공무원 출신인 양성만(40) 서울시 특사경은 "처음에는 스스로도 어색해 단속 나가기 전에 거울 보고 연습을 했다"면서 "여섯살배기 딸이 친구들에게 '우리 아빠 나쁜 사람 붙잡는 경찰이야'라고 말하는 걸 보며 경찰로서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시 사법보좌관을 맡고 있는 지석배(43) 대전고검 부장검사는 "특사경 제도는 복잡다양화 하는 현대 사회에 맞는 경찰 제도"라며 "수사 경력이 쌓이면 앞으로 일반 경찰과 어깨를 나란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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