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웅, 세계 유일 제품에 바이어들 물밀듯… 풍력 단조품 '날개'
부산 강서구 송정동 녹산국가산업단지에 자리잡은 단조(鍛造) 전문회사 태웅. 본사 건물로 들어서자 외국계 기업에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로비에서 서성댔다.
이내 나타난 회사 직원들을 따라 상담실로 하나 둘 사라진 이들은 미국, 독일, 일본 등에서 온 해외 바이어들. 영업사원이 세계로 뛰며 바이어를 만나도 시원찮은 마당에, 부산에 앉아서 제 발로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태웅의 비결은 간단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들 수 없는 부품을 생산하는 게 그 이유였다. 우리나라가 녹색 산업과 서비스의 중심지가 되는 '그린허브 코리아'의 미래상이 이미 태웅에선 현실이 되고 있다.
1981년 작은 공업소에서 시작한 태웅의 업종은 '자유형 단조업'. 프레스로 쇠를 두드려 제품을 만드는 '현대판 대장간'이다. 사업 초기 선박과 자동차 부품을 납품하다 2003년 녹색 산업의 총아로 떠오른 풍력발전기에 주력하면서 녹색성장산업의 중심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세계 풍력시장 점유율 1위인 베스타스와 GE, 지멘스 등이 주요 고객이다.
이들 업체에 풍력발전기의 주요 부품인 타워플랜지(발전기 타워의 원통형 기둥을 연결하는 이음새 부품)와 메인샤프트(날개의 운동에너지를 터빈에 전달하는 회전축)를 공급하고 있다. GE의 풍력발전 부품 물량 가운데 50%는 태웅이 공급한다.
태웅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1만5,000톤급 프레스와 지름 9m의 링을 만들 수 있는 장비인 롤링밀을 갖추고 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을 재빨리 읽고 대응한 탓에 경쟁사들이 거의 없을 정도다. 매출액은 2004년 1,301억원에서 2008년 6,153억원으로 4년간 4배 이상 급증,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 정상을 다투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를 반영하듯 영국 선데이타임스가 전 세계 환경 분야에 두드러진 투자실적을 보인 100인을 선정해 최근 발표한 '녹색 부자 명단'(Green Rich list)에서 태웅 허용도(61) 회장이 90위에 이름을 올렸다.
굴뚝산업의 대표 업종이던 단조산업이 녹색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허 회장은 "소량 다종의 부품을 주문 받아 몇 주 안에 공급해야 하는 자유단조의 특성을 살려 결재 과정이 길고 복잡한 대기업은 할 수 없는, 중소기업 만의 영역을 찾아 주력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주에서 납품까지 대기업이 6개월에 걸쳐 할 일을 태웅은 2주면 마무리 한다.
덩치는 중소기업이지만, 매출액과 생산성에 있어서는 여느 중소기업과 비교를 불허한다. 250여명 직원의 1인당 매출은 25억원으로, 일반 중소기업의 10배다.
박철종 기획실장은 "에너지 문제가 부각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 풍력발전 관련 사업에 대비해 투자를 해놓은 것이 세계 최대의 풍력부품 단조업체로 성장한 기반이 됐다"고 전했다.
태웅은 단조부품의 원료가 되는 제강사업 진출도 검토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원자재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잉곳(철 덩어리) 등 제품의 원료가 되는 원자재를 다량 확보한 덕에 주문을 차질 없이 소화하면서 안정적인 소재 공급의 중요성을 체득했기 때문이다.
허 회장은 "업종 특성상 언제 어떤 주문이 얼만큼 떨어질지 예상할 수 없다"며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 자체 제강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태웅은 또 향후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원자력부품 사업에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허 회장은 "지금까지 외국기업 납품을 통해 그 나라의 풍력시장 성장에 기여해 왔다"면서 "앞으로는 국내에도 풍력발전 설비 기업들이 생겨 태웅의 우수한 부품을 쓰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태웅 같은 알짜 녹색기업들이 잇따르면 외국인이 녹색 산업과 서비스를 위해 그린허브 코리아를 찾을 날도 멀지 않았다.
부산=정민승 기자
■ 정부의 그린허브 코리아 전략은 "아시아 최대 탄소배출권 시장 유치"
"아시아에서 가장 큰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세우겠다."
정부가 최근 밝힌 '그린허브 코리아' 전략의 핵심이다. 그린허브란 녹색 산업 관련 자본과 기술, 인력이 모이는 곳이자 녹색 상품과 서비스 거래의 중심지를 의미한다. 녹색성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을 유치, 그린허브를 선점함으로써 우리나라를 아시아의 녹색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란 기업이나 국가별로 배정받은 탄소배출한도(Cap)를 거래하는 시장이다. 탄소배출한도가 남는 또는 초과한 곳끼리 이를 사고 파는 장터로 이해하면 된다. 세계은행은 탄소배출권 거래 시장이 2010년 1,5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2020년에는 3조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물론 우리 정부가 그린허브가 되겠다고 해서 다른 나라들이 이를 순순히 따라줄 리는 만무하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기후변화대책 등을 선도해온 이웃나라 일본은 우리의 가장 큰 경쟁 상대이다.
정부 관계자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시작한 것은 사실이나, 우리는 국력만 모으면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를 발휘하는 잠재력과 폭발력을 가진 민족"이라며 "이미 녹색성장을 국가전략으로 내세우며 녹색 산업, 기후변화, 친환경 에너지, 지속발전 정책 등을 모두 아우르는 세계 최초의 저탄소 녹색성장기본법을 우리가 먼저 만들게 된 데 의미를 둬 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우리나라의 그린허브 코리아 전략의 성패는 우리가 얼마나 녹색 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녹색 산업이 아시아 최고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이와 관련된 자본과 기술, 인력이 우리나라로 몰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나아가 녹색 산업 경쟁력이 결국 녹색 관련 기술과 녹색 부품ㆍ소재의 경쟁력에서 좌우될 것으로 보고 녹색 연구ㆍ개발(R&D)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윤상직 지식경제부 산업경제정책관도 "결국 미래 경쟁력의 관건은 소재"라며 "특히 소재 부문 R&D는 산ㆍ학ㆍ연 연계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고, 대학 연구소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도 있어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린허브 코리아를 위해 크게 네 가지 방면의 전략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먼저 친환경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기반 조성이다. 녹색 산업을 수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에너지나 녹색(환경) 관련 국내 전시회의 대형화와 함께 국제 전시회 참가를 적극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둘째, 녹색 산업 분야의 전략적 외국인 투자 유치 추진이다. 발광다이오드(LED) 등 시장성장 단계인 분야는 기업 중심으로, 이산화탄소 포집ㆍ저장 등 잠재력이 큰 분야는 기술 중심으로 투자를 유치하겠다는 복안이다. 조세 감면, 입지ㆍ현금 지원 등 외국인 녹색 산업 투자 유치에 적합한 인센티브도 마련된다.
셋째, 녹색 산업의 해외 진출 강화이다. 이와 관련된 전담 조직을 구축, 환경ㆍ에너지 분야의 시장 조사와 해외 진출 지원 등을 체계화한다는 게 정부 생각이다. 경쟁력 높은 기술을 보유한 선진기업과의 전략적 제휴와 해외 인수ㆍ합병(M&A)도 지원된다.
넷째, 친환경 상품 무역 원활화를 위한 전략적 통상 대응 추진이다. 지경부 관계자는 "환경 상품 전반에 대해 기본적으로 무역 자유화를 추진하되,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녹색 산업에 대해서는 경쟁력을 확보할 때까지 산업 촉진과 보호 측면을 함께 고려할 것"이라며 "특히 우리 환경상품 수출의 60% 이상이 중국과 동남아 등 개발도상국에 집중돼 있는 점을 감안, 전략적 협상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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