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시스템의 급격한 변화가 국민을 대거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때 아닌 이념 논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의학 저널 란셋(Lancet) 최신호에 실린 '대규모 사유화(privatisation)와 동구권 국가의 사망률 증가'라는 논문은 구 공산권의 급격한 사유화 정책이 국민의 사망률 증가 및 평균 수명 감소와 긴밀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가장 급속한 경제적 변화를 경험한 러시아의 경우 사유화가 최고조에 이른 1991년에서 94년 사이 남성 노동인구 사망률이 18% 증가했으며 평균 수명은 64세에서 58세로 급락했다. 데이비드 스터클러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 등 연구진은 '실직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스트레스 그리고 그에 따른 폭음'을 이유로 들었다.
연구 결과가 자본주의 비판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가운데 난데 없이 도마 위에 오른 인물이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다. 그는 공산권 국가의 성공적인 자본주의화를 위해 급격한 사유화라는 '충격요법'을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국제자문기구인 가르텐 로스코프의 데이비드 로스코프회장은 외교 전문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학자들의 주장이 맞다면 삭스 교수는 대략 학살을 자행한 셈"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삭스 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러시아인의 폭음은 실업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금주 캠페인을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논쟁은 동구권을 넘어 현재 급격한 경제 변화가 진행 중인 국가들로 번져가고 있다. 로스코프는 "이 연구의 요점은 급격한 경제 시스템의 변화가 국민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금융기관 국유화를 통해 역으로 사회주의식 경제 정책을 감행하는 오바마 정부도 비슷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동구권과 마찬가지로 사유화 정책을 펴고 있는 인도와 중국도 마찬가지다.
FT는 "인구 밀도가 높은 인도와 중국의 피해는 더욱 클 것"이라고 적었다.
연구진들은 논란 확산에 당혹한 모습이다. 이들은 FT에 "우리의 연구는 환경과 질병의 관계에 관한 것 일뿐 이념에 관한 것도,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아니다"고 말했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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