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래 흥행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연극열전' 시리즈는 대중을 연극으로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했는지, 스타캐스팅을 내세운 관객몰이로 시장을 독점하고 있지는 않은지, 논란이 있어 왔다.
그런데 연극열전 시리즈 제작진이 파파프러덕션과 공동 제작한 2009년 신작 '삼도봉美스토리'는 관객 인지도나 스타캐스팅을 염두에 두지 않은 창작극 초연작이어서 흥미롭다.
'삼도봉美스토리', 제목은 이미 형식과 내용의 이율배반을 함축하고 있다. 장르 공식으로는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를 캐는 수사물을 좇되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아름다운 사람살이의 사연들로 충만하다.
'강철왕' '팔인' 등 최근 작업에서 과격하리만큼 신체성과 범람하는 대사로 승부해왔던 연출가 고선웅은 신인작가 김신후의 해학적인 입담과 웃음 뒤의 짠함으로 마무리하는 얘기꾼의 솜씨를 느긋한 유희정신으로 조율해 냈다.
연극엔 무엇보다 '지금, 여기'의 현실감이 살아 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이후 가속화될 농촌의 붕괴와 파국을 블랙코미디의 쓴웃음으로 담아낸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가 만나는 가상의 접경지대 삼도봉에 지어진 미국산 수입 양곡 창고에서 '대가리 없는' 살인 방화 토막시체가 발견된다.
때는 바야흐로 큰 태풍 '놀래미'가 몰아친 밤, 저마다의 사연과 울분을 안고 창고를 찾은 농민 4인이 용의자로 지목된다. 서울에서 파견된 독종 형사 장대식은 따박따박 표준말과 논리로 '순 촌것들'을 만만히 보고 범인 색출과 범죄 동기, 결정적 증거들을 수집하기 위해 탐문해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용의자들의 3도를 섞은 사투리 남발과 에둘러가는 어법 속에서 수시로 길을 잃는다.
인물들의 숨은 사연 속에는 농촌 현실의 리얼리티가 가감없이 녹아 있다. 사기 국제결혼으로 상처 입은 노총각 배일천, 잘못된 행정 처리로 철거령이 내려 집 잃게 생기고 마누라마저 집 나가 노상 술타령인 이장 '노상술', 농민운동가로 전경 근무 중인 아들과 투쟁 현장에서 부딪쳐 아들을 잃은 '갈필용', 세상 꼴을 이리 만든 '대가리'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산 넘어 들이닥친 강원도의 힘 '김창출'까지 캐릭터의 힘이 단단하다.
공연 초반인지라 극의 리듬을 음향효과와 브리지 음악 등 외적 요소에 의존하는데 공연이 좀 더 안착되면 사투리의 향연과 인물들이 놓는 엇박만으로도 희극적 리듬은 충일해질 것이다.
잘못된 농촌정책 속 농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한미자유무역협정 등을 두고 벌이는 현실비판의 언어들은 탁주 한 자배기에 갓김치를 깨문 듯 청청하고 알싸하기만 하다.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장기 공연.
극작ㆍ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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