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1시 59분 26초. 서울 고등과학원에서 카운트다운과 파이 커팅식이 열렸다. 이름하여 '파이 데이' 행사의 개막이었다. 밸런타인데이(2월 14일)나 화이트데이(3월 14일)는 알지만 파이데이라니? 파이를 먹는 날이어서 파이데이가 아니라 원주율을 뜻하는 π의 날이다.
3.1415926…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파이의 앞자리 세 숫자 3.14에서 유래한 날이다. 198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과학관에서부터 퍼져나갔다.
평소 고요한 이론연구의 전당인 고등과학원은 이날 인근 광운, 홍릉, 경희초등학교에서 찾아온 3~6학년 학생 70여명으로 북적였다. 최윤서(수학부), 김재완(계산과학부) 교수는 강연에서 아이들에게 파이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파이란 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율이라는 단순한 개념이지만 수천년 동안 호기심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18세기의 천재적 수학자 오일러는 π = 4/1 4/3 + 4/5 4/7 + 4/9 4/11…(그레고리-라이프니츠 급수)로 표현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물리학에서는 두 점 사이의 전기력 계산식, 우주상수,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 아인슈타인의 장방정식, 정규분포의 확률밀도함수 등에 파이가 들어간다.
파이 수를 구하려는 시도는 기원전 1900년 경부터 바빌로니아(25/8), 이집트(256/82), 인도(339/108) 등에서 이뤄졌다. 480년 중국 츄총치의 계산값(π = 355/113이고 3.1415926 < π < 3.1415927)이 이후 900년 간 가장 정확한 근사값으로 통했다.
파이값 구하기에 평생을 바친 이들도 있는데 16세기 루돌프 반 쾰렌은 35자릿수까지 구해 묘비에 남겼고, 19세기 윌리엄 상크스는 15년에 걸쳐 707자리까지 계산해냈다. 오늘날 슈퍼컴퓨터로는 1조2,411억자리까지 구해낸다.
몇몇 학생의 비상함은 파이의 신비 못지않았다. 김 교수는 강연 중 "1,000개의 보석을 10개의 가방에 나눠 넣고 정확히 117개의 보석만 꺼내려면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열면 될까?"라는 문제를 냈다.
잠시 후 한 6학년 여학생이 "보석을 1개, 2개, 4개, 8개 식으로 넣은 뒤 117을 2진법으로 써서(1110101) 1에 해당하는 가방만 열면 된다"고 답해 김 교수를 놀라게 했다. 보석을 1개부터 시작해 왼쪽으로 가면서 2배씩 넣으면 2진법으로 자릿수가 하나씩 올라가는 것이어서, 1의 가방 보석을 다 합치면 117이 된다.
이날 행사의 대미는 파이 글짓기였다. □□□-□-□□□□-□-□□□□□와 같이 파이 수에 음절을 맞추는 문장 짓기다. '동생은 또 때립니다' '파이는 짱 재미있다' '좋아요 이 숫자들이' 등 학생들이 써낸 3-1-4 운율의 짧은 글들 중, '화창한 봄 보고싶다'가 장려상을 받았다.
본상은 '오늘은 이 무리수의 큰 생일잔치예요'(반올림해서 3-1-4-1-6)와 영어로 'May I have a large container of coffee'(3-1-4-1-5-9-2-6) 등을 써낸 학생 3명에게 돌아갔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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