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근당은 최근 두통, 치통, 생리통 약 '펜잘'의 포장에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화 <아델레 브로흐 바우어의 초상> 을 입혔다. 국내 제약 업계 최초의 명화 마케팅으로, 펜잘의 주 소비층이 20~30대 젊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남의 시선에 신경을 많이 쓰는 여성들이 갖고 다니는 약이기 때문에 귀부인을 그린 명화를 넣어 한껏 멋을 낼 수 있도록 했다. 종근당은 내친 김에 국내에서 열리는 클림트 전시회의 공식 후원자로도 나섰다. 아델레>
약이 옷을 갈아 입고 있다. 끝 모를 경기 불황에 맞서고자 확 띄는 색깔로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기본이고, 주요 고객 층의 기호에 맞춘 새 디자인을 앞 다퉈 내놓고 있다. 전통의 명약들이 수 십년 동안 고집해 온 포장을 벗어 던지는가 하면, 가짜 약 때문에 골치를 앓았던 신약들은 베끼기 어려우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더한 디자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한국애보트의 비만치료제 '리덕틸'은 지난해 말 약 케이스를 꽃과 나뭇잎을 화사하게 수놓은 상자로 바꿨다. 마케팅 담당 박희정 과장은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보석함 느낌이 나도록 디자인했다"며 "약을 다 먹은 뒤 케이스는 머리 핀 등 작은 소품 보관함으로 쓸 수 있도록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렸다"고 강조했다.
오래되고 틀에 박힌 이미지에서 벗어나 새로운 고객 층을 확보하기 시도도 눈에 띈다. 감기약 '판피린'을 만드는 동아제약은 지난해 말 신제품 '판피린 큐'를 내놓으면서 "감기 조심하세요"로 잘 알려진 '판피린 걸'의 옷을 갈아 입혔다. 1960년대 등장한 판피린 걸이 '불혹'의 나이를 넘기면서 낡았다는 평가와 함께 젊은 층 공략에 한계가 많다는 판단에 따라 세련되고 귀여운 소녀 이미지로 바꾼 것이다.
대웅제약 '우루사'는 '남성들 술 깨고 피로 푸는 약'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 온 가족을 위한 피로 관리제로 거듭나기 위해 다음 달'여성용 우루사'를 내놓으면서 기존 아빠 곰 대신 엄마 곰과 아기 곰을 등장시키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부채표로 이름 난 동화약품 '활명수'도 12년 만에 새 단장했다. 부채의 배경을 밝게 하고 활명수의 상징색인 녹색도 환하게 바꿔 산뜻한 느낌을 줬다.
가짜 약과 불법 유통으로 골치를 썩던 종합비타민 '센트룸'과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는 새 디자인을 택하면서 기능성을 강조했다. 센트룸을 판매하는 한국와이어스는 인터넷을 통한 불법 유통이 늘어나자 기존 영문 로고에 추가로 한글 로고와 제품 소개를 넣고 글자체와 스펙트럼 바도 전 세계적으로 통일했다. 비아그라는 위조를 막기 위해 홀로그램을 바꿨다. 제조사인 한국화이자는 "정면에서는 파란색으로, 45도 비스듬히 눕히면 보라색으로 보이도록 바꿔 진짜, 가짜를 쉽게 알아낼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항생제 '트리악손'의 겉포장을 4가지로 나눴다. 같은 성분이라도 함량이 다른 약의 옷 색깔을 흰색(낮은 함량)→파란색→핑크색→노란색(높은 함량)으로 구분해 누구나 포장만 보고도 종류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옷 갈아입기는 약 뿐만이 아니다. 세계 콘돔업계 1위인 유니더스는 지난해 독일의 유명 팝 아티스트 안도라와 디자인 그룹 RpD에 새로운 콘돔 디자인을 맡겼다. 메르세데스 벤츠, 몽블랑, ING생명과 작업했던 이들이 만든 고급스러우면서도 친근함이 돋보이는 호랑이, 나비, 푸시캣 등 동물 시리즈 3종 콘돔 세트는 유럽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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