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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담이 사라진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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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미담이 사라진 시대

입력
2009.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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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언제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옮기거나 만들어내면서 이야기는 어마어마한 양으로 늘어났고 무궁무진해졌다. 급기야는 한 문명의 문화 상징이 되기도 했다. 각 민족마다 가지고 있는 신화나 전설, 야담, 민담이 다 그런 것들이다. 그런 이야기는 듣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삶에 깊게 작용해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이야기의 소중함이 증명되는 셈이다.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요즘 같은 정보통신 사회에서는 이야기의 다양성이 이미 무한대로 증폭되고 말았다. 요즘 세상을 떠도는 각종 이야기들은 방송, 통신망을 타고 무서운 기세로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시대가 되었지만 정작 그 내용을 살피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항간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온통 음모담 아니면 괴담, 아니면 무슨 무슨 설(說)이다. 그뿐 만이 아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근거 없이 누군가를 중상하고 모략하고 비방하는 악담이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이다. 그런 악담과 괴담과 설에 의해 상처 입은 사람이 자살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야기라는 건 그저 해악만 가득한 잡스러운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그러한 악담과 괴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미담도 있는 법이다. 경제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초등학교를 다녔던 필자는 그 힘들고 가난하던 시절 쉽게 접할 수 있었던 미담이 항상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가난해서 점심을 굶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도시락을 대신 싸준다든가, 등록금을 대신 내주신 동네 이웃 아저씨, 버스를 그냥 태워주는 버스기사, 과자 공장에서 자기도 모르게 과자를 집어먹었다고 자백하면 실직할 친구를 대신해 나서주는 우정…. 미담이라는 것의 수준은 그저 자기가 갖고 있는 주머니에 있는 돈 몇 푼, 작은 정성 몇 개를 나눠주는 정도다.

그때는 미담을 모은 미담집이라는 책도 있었다. 독서광이었던 나는 그 어떤 동화집이나 그 어떤 만화책보다도 미담집을 즐겨 읽었다. 전쟁 고아들을 실어 나른 미군 조종사의 이야기라든가, 장난치다 실수로 눈멀게 한 동생을 데리고 평생을 함께 떠돈 방랑소년, 혹은 작은 구멍이 난 둑을 손가락으로 막으며 밤새 추위에 떨다 숨진 네덜란드의 용감한 아이 등등의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이러한 미담 속 친구들의 아름다운 희생과 봉사 이야기는 나의 정서발달이나 훗날 작가로 자라는데 큰 자양분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세계 각국의 동화책에 나오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은 것이거나 실제 있었던 이야기들을 다규멘터리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지만, 이상하게 미담집을 열기만 하면 마음이 훈훈해지고 나도 커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미담이라는 단어조차 잘 쓰이지 않는 말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이 그만큼 추하고 악해져서일까. 아니면 미담에는 감동을 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빡빡한 현실 때문일까. 그럴수록 이 시대의 아픈 정서를 치료할 수 있는 것은 미담뿐이다.

미담을 다시 살려야 한다. 우리 주위 어려운 사람들, 마음 아픈 사람들의 담담하고 따뜻한 이야기를 많이 유포시켜야 한다. 미담 바이러스가 퍼져 곳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가 들려오고, 곳곳에서 서로 사랑하며 배려하는 이야기가 많아진다면 우리 사회는 척박함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야기가 진정 인간에게 기여하는 길이다.

고정욱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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