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입구에 보들레르의 시 '조응'의 일부가 적혀있다. '향과 색과 소리는 서로 부르며 대답한다.' 18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하는 '신오감도(新五感圖)' 전은 미술 속에서 서로 만나고 부딪히는 여러 감각을 보여주는 전시다. 회화와 조각, 설치, 영상 등 작가 24명의 작품 53점이 나왔다.
전시 제목은 16~17세기 서양회화에서 많이 그려진 '오감도'에서 따왔다. 꽃과 빵, 악기 등 인간의 다섯가지 감각을 상징하는 소재를 그린 그림으로, 루뱅 보갱의 '오감'과 카라바조의 '류트 연주자'가 대표적이다.
전시를 기획한 최정희 큐레이터는 "과거의 오감도는 감각의 찰나성을 보여주는 교훈적인 그림이었지만, 오늘날 미술에서의 감각적 경향은 제작과 감상에 영감과 상상력을 부여하는 도구로 작용한다"면서 "'미술은 보는 것'이라는 시각 위주의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맥락에서 미술을 체험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눴다. 청각, 촉각, 미각, 후각이 연상되는 회화 작품을 모은 '감각의 환영'과 실제 여러 감각을 동원한 설치와 미디어 작업들을 모은 '다중감각:교차와 혼합'이다.
출발점은 김환기의 추상화 '봄의 소리'. 푸른 바탕에 반복된 점의 리듬감을 통해 봄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은 2007년 K옥션에서 13억원에 팔렸다. 김환기는 '밤의 소리' '론도' 등 유독 청각적이고 음악적인 소재의 작품을 여럿 남겼다. 이준의 '굉음'은 검은 바탕과 서로 맞물린 커다란 원으로 산업화시기 공장지대의 소리를 표현했다.
바람에 출렁이는 보리밭을 그린 안병석의 유화 '바람결'은 바람의 청량감이 피부에 와닿는 듯하고, 이우환의 '바람과 함께'는 붓이 바람에 따라 흔들린 것 같은 거침없는 흐름을 느끼게 한다. 윤병락의 사과와 복숭아, 안성하의 사탕, 이용학의 포도 등 극사실화들은 미각과 후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연상작용을 경험하고 나면 직접적 자극을 주는 물리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안성희의 설치작 '정원의 향'은 실제 잔디를 깔고 스피커를 통해 새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도심 속 정원의 모습을 구현했다.
신미경의 조각작품들은 향긋한 냄새로 관람객들을 끌어당긴다. 달항아리, 고려청자 등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 도자기들은 모두 비누로 만들어진 것이다.
박재웅은 브로콜리, 마늘종, 가지 등 식물이 시간에 따라 변화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실제 그 결과물을 함께 전시했다. 자연의 생성과 소멸, 순환성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마늘종의 형상은 갈색의 가루로 부스러졌지만, 매운 냄새는 여전히 코를 자극한다. 최승준의 '반딧불의 숲'은 관람객들의 움직임이 스크린 속 반딧불의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인터랙티브 영상 작업이다.
전가영은 어두운 공간에 다섯 개의 의자를 놓았다. 각 의자에 앉으면 정면에 설치된 그림에 불이 들어오면서 각기 다른 음악이 연주된다. 색채와 소리를 연관시킨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그는 "색을 섞을 때 소리가 섞이는 게 들린다"고 말했다.
김병호의 설치작 '300개의 조용한 꽃가루'는 6m 길이의 쇠파이프 300개를 벽에 꽂고, 맨 끝에 꽃수술 모양의 나팔을 끼웠다. "식물들의 소리없는 번식과 확산의 과정에서 거대한 에너지를 느꼈다"는 작가는 꽃수술 속에 작은 마이크들을 숨겨놓았다.
관람객이 소리를 내면 컴퓨터를 통해 새로운 소리로 바뀌어 꽃가루가 흩어지듯 메아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300개의 나팔을 통해 들리는 자신의 소리가 어떨지 궁금하지 않은가. 전시는 6월 7일까지, 관람료 700원. (02)2124-8934
김지원 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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