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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홀로 고향 지키는 친구 '집배원 임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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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홀로 고향 지키는 친구 '집배원 임춘섭'

입력
2009.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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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경남 거창군 신원면 용현초등학교 5회 졸업생입니다. 너나없이 가난했고 앞 뒤가 온통 산으로 덮인 산간오지에 학급이라곤 한 반 뿐이어서 우리는 6년 간 같이 생활했습니다. 고향의 면 소재 우체국에서 집배원으로 일하는 그 친구는 어려서부터 다리가 불편했고 키가 작아서 언제나 앞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 진학도 못했습니다. 어제 오랜만에 동창회에서 그 친구를 만나 애기하면서 들은 삶이 너무 아름다워서 글을 씁니다.

친구 이름은 임춘섭. 올해 52살에 집배원경력 31년차. 동창 중 유일하게 고향을 지키고 있지요. 신원면 80여 농가 어느 집의 아들 딸은 어디 사는지, 무슨 병을 앓고있는지, 사는 형편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것이 없답니다. 처음엔 한 두분 거동이 불편한 분들의 보건소 약 심부름을 해주기 시작했는데 어르신들이 너무도 고마워 하시는 게 좋아서 아예 면 전체 노인들의 약 심부름을 하게 되었답니다.

어르신들이 보건소 약을 타려면 불편한 교통에 불편한 몸으로 하루종일 걸리던 것을 보건소에 비치된 진료기록대로 친구가 약을 타주다 보니 약이 떨어지면 으레 전화를 하신다는 겁니다. 한번에 1,200~1,500원 정도 하는 약값은 대부분 챙겨주시지만 노인 분들이라 잊어버리는 경우도 많아서 어떤 달에는 7~8만원이나 쌓인 약값을 자기가 낼 때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시작한 친구의 약 심부름이 거창군 우체국에서 좋은 아이디어로 채택되고 체신청에도 보고되어 체신청아이디어대상을 받고 해외여행포상자로도 선정되었답니다. 보건소에는 당뇨. 고혈압 등 모든 노인들의 병력이 있고. 약은 보름에 한번씩 지급하기 때문에 13일 정도 되면 보건소에서 집배원에게 연락을 해서 각 가정으로 약을 배달해주도록 하는 거지요. 토요일에는 보건소장님이 아예 그 친구집에 조제한 약을 두고 퇴근하신답니다.

자신이 조금 수고해서 많은 어르신들이 편안해 하셔서 좋다는 친구만큼이나 그에겐 예쁜 마음씨를 가진 아내가 있답니다. 도시에서 시집와 농사일이라곤 모르던 그녀가 "우리도 농사짓자"고 졸라 고추 마늘농사를 짓기 시작했는데 정작 파는 것은 없고 모두 나누어 준다네요. 해외포상경비마저 현금으로 주면 노인들을 위해 쓰겠다는 친구나 그의 아내 모두가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있으니까 동창들은 고향에 계신 부모님 걱정은 하지 말라"며 환하게 웃는 친구. 우편물이 없어도 혼자 사는 노인들이 무사한지 꼭 둘러본답니다. 얼마 전 혹시나 하고 찾아간 집에서 노인 시신을 발견해 목격자조사까지 받았답니다. 저 어른들이 다 돌아가시면 누가 농촌에 남을지 걱정이 된다는 친구입니다.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착한 제 친구…, 본받고 싶은 친구입니다.

부산 동구 박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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