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지겨운 국영수 과외 그만하자, 좋아하는 컴퓨터 게임과 실험실습만 열심히 하면 KAIST나 포스텍 갈 수 있대. 딸아, 값비싼 미술학원 안 다녀도 돼, 어릴 적부터 패션과 디자인에 재능이 많았으니 홍익대 미대는 떼어놓은 당상이야."
대학이 직접 나서서 잠재력과 창의력을 기준으로 학생들을 찾아와 합격증을 준다는 소식에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이 설레고 있다. 과연 그럴까?
낯설기만 했던 입학사정관제도가 대학입시를 정상화하고 공교육을 되살리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횡행하고 있다. KAIST가 정원의 5분의 1 가까이 그렇게 뽑겠다 하자, 포스텍은 신입생 전원에게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입시 전문 미술학원 수강생들이 선망하는 홍익대 미대는 실기시험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알 만한 대학들도 합세하는 게 대세라고 여긴다. 정부와 정책당국으로선 공교육 회생이 보이는 듯하고, 학생과 학부모는 사교육의 짓눌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조급한 선언 성급한 기대는 금물
교육 3불(不)정책이 '국시(國是)'처럼 여겨지던 2007년 3월 30일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의 '반정부적ㆍ반교육적' 선언이 있었다. "학생이 스스로 답을 찾는 '자기 주도형 학습'이 공교육 시스템에 소화되려면 차별화한 고교교육이 필요하다. 특목고를 더욱 활성화해 우수한 학생을 위한 '눈높이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통합교과형 논술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이었지만,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고백이었다. 서울대는 이를 시행할 '입학전형요원' 충당을 위해 정부예산을 받아냈다.
서울대가 2005년부터 실시한 농어촌특별전형도 모든 고교를 평등하게 대하는 지역할당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농어촌특별전형과 '입학전형요원제도'가 지금의 입학사정관제의 모체인 셈이다. 수시ㆍ특별전형이 변형된 모습이다. 학생들을 1~2점 수능성적이나 내신성적만으로 줄 세우지 않고, 인성이나 활동, 창의력과 잠재력까지 판단해 평가하는 입학사정관제는 충분한 장점이 검증돼 있다.
이 제도는 1920년대 미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산업화 물결을 타고 새로운 중산층으로 등장한 중소 상공인들은 유서 깊은 명문대학을 유대인과 기득권층 자녀들이 점령한다는 사실을 견디기 어려웠다. 유대인의 합격비율을 제한하고 중산층의 입학비율을 높이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 낸 것이 입학사정관제였다. 특목고와 강남학군, 일반고와 지방학생의 갈등이 높은 지금의 우리와 많이 흡사한 양상이다.
요즈음 미국 대학에서 이렇게 학생을 선택하는 원칙과 기준은 비슷하다. 학업성적이 누가 봐도 우수하다고 여길 만한 학생, 성적은 어중간하나 잘 배울 것 같은 학생, 성적이 부족하지만 고려할 다른 능력이 있는 학생을 각각 3분의 1씩, 정원의 2~3배수를 뽑아 전문적 입학사정관이 면접을 통해 추려낸다. 교과목과 비(非)교과목이 엇비슷한 영향력을 갖게 되므로 굳이 책상에만 앉아 있거나 학원과 과외에 목을 매달 이유가 없는 것이다.
공교육 활성화에 특효가 있는 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정착되기엔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미국식 제도를 바로 적용할 듯이 정부와 대학이 선전하고, 이에 따라 학부모와 학생들은 당장 자신들이 그렇게 입학하는 줄 알고 설레고 있는 게 걱정이다. 정부가 공교육 활성화의 홍보에 열을 올리니, 학부모들은 사교육비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가득하다.
오랜 시행착오 거쳐야 완성될 것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제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는 데 50년 가까운 시련이 있었고, 아직도 전국적으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입학사정관을 양성할 제도적 장치, 그들이 가져야 할 독립성과 도덕성, 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려는 대학의 양식과 책임감 등 전제되어야 할 사회적 조건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혹은 1, 2년 뒤에 우리의 아이들이 그렇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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