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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나누며 사는 미국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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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나누며 사는 미국인들

입력
2009.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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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동네에 사는 40대 중후반의 한인 부부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공공도서관에서 미국인 여성으로부터 자원봉사 영어강습을 받는다. 인도계인 남편의 성을 따라 진 다스굽타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백인 여성은 60세가 넘은 할머니이지만 영어가 서툰 한인 부부를 아무 대가 없이 1년이 넘도록 가르치고 있다. 한인 부부가 감탄하는 것은 할머니의 열정과 성실함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제 시간을 지키는 것은 물론, 강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면 자료나 각종 교재를 직접 만들어 갖고 나오기도 한다.

위기에 자원봉사 지원 더 증가

아내와 함께 강습을 받는 한인 남편은 "강습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인데 준비해오는 교재를 보면 족히 3시간은 걸렸을 것이 많다"며 "그 정성이 너무 고맙고 미안하기도 해서 나도 생업에 바쁘지만 가급적 숙제는 하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할머니 강사의 기대처럼 영어가 쑥쑥 늘지 않는 것도 미안한데 숙제까지 안 해가는 것은 너무 염치없다고 생각해 도서관 가는 전 날에는 아내에게 "숙제 했냐"고 채근하기도 한다.

미국은 지금 '대공황'이다. 경제지표로 보면 아직 1930년대 대공황 정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길거리에 나가보면 어려운 경제가 실감난다. 할인점은 물론 유명 백화점까지 물건을 팔지 못해 아우성이다. 몇 번씩 고쳐 쓴 가격표가 네 개, 다섯 개씩 물건에 덕지덕지 붙은 것은 보통이고 그래도 팔리지 않아 청산세일(clearance sale)에 들어가는 것도 부지기수이다. 실직자들이 모인 난민촌이 80여년 만에 다시 등장하고 무료급식소마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먹고 살기 힘든 미국인이지만, 자원봉사는 줄지 않고 있다. 유에스에이 투데이에 따르면 미국 내 자원봉사 지원자는 오히려 크게 늘고 있다. 연방정부 봉사프로그램인 '아메리코어(Americorps)' 지원 신청자는 올해 들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배 이상 늘었다. 한 자원봉사 단체의 대표는 미국인의 자원봉사 행렬에 대해 "경제위기 때 자원봉사에 나서는 것을 2차 대전 때 당연한 의무로 여겼던 군복무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이 자원봉사나 기부를 생활화하고 있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얘기는 아니지만, 함께 나누는 공동체 의식이 절실한 지금은 그것이 더욱 소중하고 값지다. 학교 교육프로그램에 돈을 쾌척하는 학부모나, 지역공공센터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자원봉사나 기부는 시간과 돈이 남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남을 돕는 것은 나를 채우는 것

미국 못지않게 살림이 팍팍한 한국은 어떨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우리 공동체에 속하지 않는 외부인이 장사로 돈을 벌면서도 우리 형제자매를 우습게 여긴다.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은 거의 한국인 아니면 아랍인이다.' 한국인의 근면과 성실함을 우선적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이기적이고 공동체 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한 말이기도 하다.

이 달 초 아이비리그 다트머스 대학 총장에 한국계로는 처음 선출된 김 용 하버드대 교수는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만 할 게 아니라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원봉사나 기부는 여유 있을 때 하는 적선이 아니라 부족한 나와 공동체를 함께 채워가는 것이라는 점을 이번 경제위기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황유석 워싱턴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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