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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문학의 생산과 소비여, 무한확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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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인생] 문학의 생산과 소비여, 무한확장하라

입력
2009.03.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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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월 12일이었다. 서울 운니동의 천도교 예식장에서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선거가 있었다. 문학평론가 조현연의 이사장 연임 당선이 당연시되고 있었는데 43세의 소설가 이호철이 돌연 선거에 뛰어든 것이었다. 전국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직접선거로 이사장을 뽑는다는 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했을까.

아마도 전통시대의 선비사회 공론 분위기 같은 것이 문학 동네에 남아 있었던 듯하다. 더구나 문단이 공인해주는 문인들은 그다지 많은 쪽이 아니었다. 당시의 직접선거에 840명의 문협 회원이 참가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거의 과열로 절대다수 회원이 운집했던 것이고 보면 그 무렵 한국 문인의 총 숫자는 1,000명을 초과하는 쪽이 아니었다.

문단 데뷔 제도가 엄격한 쪽이기도 했다. 신문의 신춘문예와 종합월간지의 신인문학상 또는 공인 문학지(동인지 제외)의 추천을 통해야 '문단'이라는 단상에 오르게 되어 있었다. 전통시대의 미풍양속과 같은 것이었을까. 문단사회는 무슨 종가집의 종친회 행사처럼 친목과 화합의 한동아리 분위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러한 문단공동체는 언제부터 흐트러지게 되었던 것일까. 그리고 문단 데뷔 제도는 어떻게 완전 문호개방의 IMF체제처럼 되어 갔을까. 1990년대 초반 무렵부터 문학 매체가 엄청 늘어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아날로그와는 다른 디지털 표현력이 문학생산자 중심에서 문학소비자와 수용문학 중심 체제로 달라져가게 했다.

현재 한국 문인은 문인협회와 작가회의의 정회원수 등을 토대로 하여 추산해보면 1만2,000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문학 전문지도 300여 종을 넘는다고 한다. 통계로만 살피면 한국문학사회는 대단한 풍작의 상황이다. 나는 이를 일단 조건없이(무조건) 긍정적인 현상이라 간주할 작정이다.

문학은 없다, 소설은 죽었다 하는 소리가 아예 지겹기만 했는데 어찌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있을까. 뿐인가, 글(언어)을 안다는 것 자체가 벌써 대단한 특권이었던 붓글씨 시대와는 달리 키보드 시대에는 누구나 닷(dot)의 컴퓨팅으로 워드프로세싱(문자 생성)을 해볼 수 있다. 육필언어 시대와는 달리 문자기계 시대에는 문학의 생산과 소비가 무한 확장되는 것이 당연하다. 문자 사용자가 직접 제작하는 문학콘텐츠(UCC), 문자를 다룰 줄 아는 자, 모두 문인이 되는 세상이 도래할 수 있지 아니할까. 작가정신이야 필요하겠지만 전업작가라는 게 아예 없어졌으면 싶다.

박태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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