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언성이 높아지시더니 급기야 TV를 보시던 아버지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하도 보아온 부부싸움인지라 처음엔 대수롭지않게 여겼습니다. 아버지는 다른 은행이자도 내야 하니 보험 해약해서라도 하여 급한 불을 끄자는 것이었고,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아껴 부은 보험을 손해 보면서까지 해약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의견대립이 급기야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서 큰 싸움이 되었습니다.
마침 집에 돌아온 오빠가 왜 그렇게 싸우냐고, 지겹지도 않냐고, 이젠 제발 좀 그만들 하시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두 분의 다툼은 끝날 줄 몰랐고 드디어 오빠가 폭발했습니다. 자식들에게 살갑게 대해줘 본적 없는 아버지께 감정이 좋을 리 없던 저희 남매였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을 말로 표현해본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오빠는 가슴에 묻어둔, 한번도 말해본적 없는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23년 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오빠와 4살인 나,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고모네 집을 가다 먼저 찻길을 달려가던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오빠는 무릎에 쇠를 박아 천정에 매달고 몇 달간 입원을 했습니다. 6인실 작은 침대에서 오빠와 나, 어머니 셋이 생활을 했습니다. 밥도 오빠 몫으로 나온 환자식을 셋이 나누어 먹었고, 잠도 한 침대에서 잤습니다. 밥을 해다 주는 사람도 없어 어머니는 항상 배가 고팠고 그럴 때마다 수돗물을 드셨다고 합니다.
오빠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코코아가 먹고 싶어서 병원자판기 앞을 서성이던 기억과, 병원에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셈으로 침대 밑에 몰래 숨겨놓았던 휴대용 가스레인지를 간호사누나에게 들켜 어머니가 쩔쩔매던 기억까지…. 아버지는 저녁에나 잠깐 오셔서는 집에서 혼자 밥을 차려먹는 일 때문에 화를 내셨습니다. 얘기를 하며 오빠는 눈물을 흘렸고 아버지는 묵묵히 듣고만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왜 늘 우리를 남처럼 대하시는 거냐고, 돈이 없으면 보험을 해약할 것이 아니라 자식인 나에게 말해보실 수 있지 않았느냐고, 오빠는 아버지에게 애원을 했습니다. 그 날 밤 가족 모두는 눈가가 젖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부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는 저녁에 들어오는 우리에게 아는 체를 하시며 밥은 먹었는지 등을 물으셨고, 오빠는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빵을 사다가 말없이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가곤 하였습니다. 직접 말들은 하지 않았지만. 저희 가족들의 마음속에 얼어있던 얼음들이 녹아 내리기 시작한 것 같았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하지 않고 쓰다듬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가족은 서로의 사랑에 고파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직 다른 화목한 가족들처럼 식구들끼리 웃고 다정하게 얘기 나눌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봄날 햇살이 겨우내 언 땅을 녹이고 새싹을 피워내듯 저희 가족들의 마음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집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가볍게 느껴집니다.
인천 남구 - 김승희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