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강한 소리에 지친 사람들에게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60)의 노래는 달콤한 이슬 같고 쉼표 같다. 그의 목소리는 깨끗하고 투명한 순수, 그 자체다. 노랫말의 음절 하나하나에 감정을 실어 전하는 정교한 표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화 '샤인'의 삽입곡,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를 기억하시는지. 세상의 모든 소란을 잊게 할 만큼 꿈같은 안식을 줬던 그 노래는 엠마 커크비가 부른 것이다.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음악을 주로 노래하는 그는 '고음악의 여왕'으로 불린다. 100장이 넘는 음반을 냈고 수없이 많은 무대에 섰지만 베르디, 푸치니 등의 주류 이탈리아 오페라는 전혀 부르지 않았다.
영국의 음악 전문지 'BBC 뮤직 매거진'은 2007년 마리아 칼라스,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등을 포함한 '역사상 최고의 소프라노 20인' 중 고음악 가수로는 유일하게 그를 선정했다.
엠마 커크비가 자신의 오랜 실내악 파트너인 런던 바로크와 함께 내한, 4월 6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한양대 음악연구소가 주최한 2007년 제2회 국제 바흐페스티벌에 참가한 이래 두 번째 내한이다.
당시 그는 야콥 린드베리의 류트 반주에 맞춰 다울랜드와 퍼셀의 곡으로 독창회를 했고, 타펠 무지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함께 바흐의 칸타타 공연도 했다.
이번에는 16~18세기 영국 음악 속에 살아있는 셰익스피어 문학의 흔적을 찾아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부제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셰익스피어 당대 또는 후대에 그의 희곡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들을 부른다.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걸작인 '템페스트' 초연(1611년) 당시 삽입됐던 로버트 존슨의 곡을 비롯해 '한여름밤의 꿈'을 각색한 퍼셀(1659~1695)의 세미 오페라 '요정 여왕' 중 아리아, '십이야' '베니스의 상인' 등 셰익스피어 연극의 부수음악을 작곡했던 토마스 안(1710~1778)의 '4개의 셰익스피어 노래' 등으로 고전문학과 음악이 만나는 무대를 꾸민다.
동행하는 런던 바로크는 바이올린 2, 베이스 비올, 하프시코드의 바로크 악기로 이뤄진 고음악 앙상블. 런던 바로크는 커크비의 노래 반주 외에 헨델의 소나타 라장조, 마랭 마레의 '생 콜롱브를 위한 무덤' 등을 연주해 풍성함을 더한다.
커크비는 정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았다. 옥스포드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고 교사로 일하면서 취미로 노래를 하다가 24세에 성악가로 변신했다.
영국 고음악 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인 앤드류 패럿이 1973년 창단한 태버너 콰이어에 합류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만 해도 고음악을 고음악답게 부르는 소프라노가 없어서 커크비의 존재는 독보적이었고, 지금도 그를 능가하는 가수가 없다.
한결같은 정성과 겸손한 자세로 무대든 음반이든 최선을 다하는 그는, 수백년 전의 잊혀진 노래를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데 앞장서 온 학구적인 예술가이기도 하다. 그가 30년이 넘도록 '고음악의 여왕'으로 존경을 받는 이유다.
공연 문의 (02)2005-0114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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