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선후배 남자들이 모이는 자리에 어쩌다 홍일점으로 끼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그들은 학창 시절 비화도 털어놓고 정치 이야기에 얼굴을 붉히기도 하면서 즐겁게 떠들고 마셔댔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선배'라든가 혹은 '너'나 '야' 같은 호칭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떨 때는 존댓말인지 반말인지도 알 수 없게 말끝을 눙치기도 했다.
어쩌다 실수라도 할 만한데 그들은 369게임이라도 하듯 신중했다. 사정은 이랬다. A는 재수하지 않고 학교에 입학했다. 재수해 입학한 B는 재수하지 않은 C와 자연스럽게 말을 놓게 된다. 한 학번 위지만 A와 B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문제는 D에게 있다. B, C와 동기지만 D는 재수도 않고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한 자리에서 만났으니 A에게 존댓말을 하기도 그렇고 A를 생각하자니 B에게 함부로 '야자'할 수도 없고 어정쩡해진다는 것이다. 그들의 나이 차라야 고작 두 살이었다. 학창 시절 내내 형 형이라고 부르다가 나중에야 나이 정리를 하고 친구가 된 사이보다는 덜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학창 시절 어두운 술집 뒷골목, 술만 취하면 남자애들이 멱살잡이를 하곤 했었나 보다. 술김에서나 "민증 까!" 소리쳤었나 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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